어제
어제 -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학동네]
작가가 살았던 삶이 책이 되었구나라고 짐작 가능했던 작품이 있습니다. 늘 그렇듯 길지 않은 글에 강렬함을 묻혀 한달음에 읽어 내려가지만 한 번에 책을 이해하기에 어려워서 여러 번 읽게 했습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에게는 읽을 때마다 자꾸 더 큰 강렬함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 책은 주인공 토비아스 호르바츠는 시계 공장에서 일하는 단순 노동자입니다. 그는 오래전 다른 나라에서 도망쳤는데 성인도 되기 전에 살인 미수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내연 관계에 있었던 학교 교사이자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의 유일한 사랑 린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남자 상도르의 등에 칼을 꽂았던 과거가 있습니다. 창녀이자 거지였던 엄마 에스테르가 그를 버리지 않고 키웠던 유일한 이유는 그가 크면 일을 시켜 돈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상도르는 토비아스를 그런 식으로 키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반대하며 에스테르를 토비아스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잠자리였던 부엌에서 이런 이야기를 엿듣던 중 토비아스는 엄마와 자기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상도르를 불쑥 죽이고 싶은 충동에 빠져 엄마와 포개져 있을 때 상도르의 등에 칼을 꽂습니다. 찌르면 아래에 있는 엄마까지 죽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아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둘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토비아스는 그렇게 조국을 황급히 떠납니다. 토비아스는 멀리서도 언제나 린을 기다립니다. 그가 기다리는 린은 조국을 떠나기 전 학교를 같이 다니던 배 다른 여동생 린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여인입니다. 그 누구도 될 수 없고 또 되어선 안 되는 그런 그녀를 항상 기다립니다. 그는 매일 같이 글을 씁니다.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죄책감으로 가득 찬 상태로, 아무런 연고도 없고 언어도 다른 타국에서 일개 노동자로 외로이 살아갑니다. 시계 공장에서 일하지만 그 공장의 누구도 완성된 시계를 만들 수 없는 비극처럼 불완전한 토막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린이 옵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고 불가능해야만 했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어린아이를 낳은 채로 의사인 남편을 따라 타국에 1년 간 방문하게 된 것인데 그 기간 동안 토비아스와 같은 공장에서 일과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토비아스의 삶은 그 이후로 완전히 바뀝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던 소망이 어느덧 현실 가운데 스며들어와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 너무나도 단조롭고 외로워 자살까지 시도했던 토비아스는 이제 차라리 쉬는 주말보다 일하는 주중이 기다려질 만큼 공장 가는 날이 더 좋아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일을 해야 할 시간에 다른 여자들이 있었던 거를 보고 토비아스는 분노를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와 칼을 하나 들고 린의 집으로 찾아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두 번째 살인미수를 저지릅니다. 치명상은 아니었으며 토비아스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경찰에 보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린은 토비아스 때문이라 여겨졌고 떠나게 됩니다.
P 116 : 나는 곧 치료될 것이다. 무언가가 나의 내부나 공간 어딘가에서 부서질 것이다. 나는 미지의 깊은 곳을 향해 떠날 것이다. 대지 위에는 수확과 참을 수 없는 기다림과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있을 뿐이다.
토비아스에게 찾아왔던 린은 과연 소망의 실현이었을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차라리 소망이 실현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간절히 바랄 때는 마음껏 기다리고 가슴 부풀기도 하며 언제나 상상하고 글도 쓰면서 일상의 따분함을 이겨낼 수 있었을 거 같았습니다. 소망이 실현되고 떠나버린 자리에는 자유가 사라진 채 현실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녀가 떠난 후 토비아스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에의 의지가 꺾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루지 못한 자살은 글을 쓰지 않는다는 행위에서 비로소 실현되었던거고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다시 조용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