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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Mar 12. 2022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누군가의 전집이나 혹은 세계문학전집을 볼 때, 첫 번째 책으로 왜 이 책으로 하였을지 늘 궁금했었습니다. 20년 넘게 10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보면, 시작을 알리는 책으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로 하였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여러 출판사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책은 많았지만 이 책을 주목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만 해도 <변신 이야기>가 참 많이 인용이 되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에 해당하는 책이었습니다. 잘 몰랐던 중요한 책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을 목표를 하는 민음사의 의도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결혼, 여름>은 카뮈 전집의 1번에 해당합니다. 미국에서의 카뮈 전집 시리즈의 <페스트>이고, 유럽에서는 그가 죽은 후 만들어진 갈리마르 출판사의 판본은 <이방인>으로 출발합니다. 카뮈의 산문인 이 책이 왜 1번으로 나왔을지,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이 책의 첫 문장만 읽어보아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굉장히 낯섭니다. 심지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작품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는 듯 한 느낌마저 받습니다. 굉장히 시적이면서 수식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며 리듬감을 가진 작품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뮈의 모습이 아닌 자유분방하면서도 폭발할 거 같은 모습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어서 아마 1번으로 이 책을 내놓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은 카뮈가 알제의 오랑을, 제밀라를, 티파사를 여행하며 돌과 태양과 바람과 폐허가 된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카뮈라서 높은 진입 장벽이라는 걱정과 마음의 준비도 필요없습니다. 카뮈가 그려주는 그 상상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숨은 화자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도 전혀 없이 그저 벅차오르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태양이 저무는 태양처럼 약간은 누렇게 물든 나른함이 느껴집니다. 특히 티파사를 노래하는 카뮈의 옆에는 윤기 넘치는 흑발의 여인이 누워있다는 상상력이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저절로 그려집니다. 그 우아함이 파도를 차고 오르는 힘센 펄떡 거림과 어울려 탱탱하게 솟아오른 피부를 태양이 어루만지면 살갗은 보기 좋은 구릿빛으로 물드는 듯합니다.     


카뮈 자신도 그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광 앞에서는 차마 문장을 끊을 수 없었던 거 같습니다. 첫 단어를 읽고 중간쯤 지나다 보면 어느새 문장에 흠뻑 취해 비틀비틀 단어 사이를 오가기 때문에 길게 늘어뜨린 경향이 있습니다.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문장 안에서 이렇게 취해 신나게 춤을 추는 듯한 문장들이 모여서 책이 마무리가 됩니다.     



P :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 뿐이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초들의 육감적인 냄새가 목을 긁고 숨을 컥컥 막는다. 풍경 깊숙이, 마을 주변의 언덕들에 뿌리를 내린 슈누아의 시커먼 덩치가 보일락 말락 하더니 이윽고 확고하고 육중한 속도로 털고 일어나서 바닷속으로 가서 웅크려 엎드린다. 


         

우리나라의 에세이집을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 이 책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카뮈의 어떤 책을 좋아하냐 물으면 전부 좋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책을 반드시 이야기합니다. 부조리의 화신 카뮈의 다른 모습일 수도 아니 본모습일지도 모르는, 특히 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모습의 카뮈를 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카뮈에게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의 영혼은 숨 막히는 열기를 호흡하며 꺼질 듯 말 듯 깜빡이는 전등 아래서 밤새 위대한 소설의 바위를 굴려나가는 모습과 또 하나의 영혼은 시원한 바다를 가르며 힘차게 수영한 뒤 따뜻하게 달궈진 모래사장 위로 기어 올라가 기분 좋은 태양 빛을 만끽하는 카뮈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뮈의 소설은 사막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하고 에세이는 바다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PS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산문집이 3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 그르니에의 <섬> 또 하나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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