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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an 24. 2022

젊은 시절의 글

by 알베르 카뮈

카뮈를 노벨문학상까지 받는 대작가의 반열에 올린 건 그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장 그르니에의 힘이 컸습니다. 노벨상 수상으로 건너간 스웨덴에서의 연설에서도 직접 그를 언급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장 그르니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달랐던 카뮈를 알아보고 학업이나 글 쓰는 걸 포기하려는 그를 설득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지켜냈습니다. 그르니에가 보았던 카뮈의 비상함은 무엇이고 보아 왔던 글들은 또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었는데 이 책이 조금은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 책은 1931년부터 1934년 사이 그가 덜 유명했을 때. 쓴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카뮈가 다녔던 알제고등학교의 학생 문예지 “쉬드(Sud)”에 발표한 생애 첫 산문 <어느 사산아의 마지막 날>에는 카뮈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는 장면을 자기 눈으로 보는 기이한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 환상은 훗날 산문집인 <안과 겉>이라는 작품으로 돌아옵니다. 특히 카뮈가 17세에 폐결핵으로 쓰러졌던 사실을 이 글에 실린 “의사가 말을 한다. 그가 하는 말은 들리지 않지만 그는 내가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는 걸 나는 안다”라는 부분은 훗날 <이방인>과 그 후 카뮈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즉 절박하게 다가오는 죽음의 강박과 그 위협에 대한 반항의 절규를 보여줍니다.


세상에 나오기 전이라 다소 서투르고 불안해 보이는 글들로 자신의 세계를 탐색하는 청년 카뮈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훗날 이어지는 빛나는 감성과 문학을 투박하게 볼 수 있었고 다른 곳에서 접하기 어려운 시 작품과 자신이 읽어왔던 글들을 나름의 문학적으로 서평이나 비평하는 성격을 띠는 에세이들이 있고, 음악과 예술에 대한 사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재밌었던 독서 노트에는 그가 존경해하던 스탕달, 지드, 프루스트, 니체, 도스토옙스키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관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의 첫 작품으로 추정되는 <무어인의 집>에서는 외부 세계와 내면의 상호 조응을 통해 조금 서투른 방식으로나마(이후 작품들을 보면 확실히 조금 어리숙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문체를 찾고자 노력하는 카뮈의 노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용기>라는 작품을 통해 어떻게 <안과 겉> 이 나올 수 있었는지 거의 초고와 같은 글도 훔쳐볼 수 있었습니다.



P 시


지평선이 달아나고,

그리고 이제 밤이다.

우는 새는

시간을 알리고

시간 속에서 청명함은

그리도 짧은 삶을

도처에서 꺼버리고

꿈의 삶 속에서

우리는 괴로워하고

우리는 눈물 흘린다.


어느 슬픔이

즐거움도 환희도 없는

내 마음을 버려둔다.


나의 누이는 어디에 있나?...

내 사랑의 누이!

내 달콤한 친구!

권태로운 나날들의

다사로운 구원...

기쁨의 원천인

그의 팔은 어디에 있나?


꿈꾸는 물 위에서

그 시간은 너무나 짧고

내 눈물 아랑곳없이

날은 죽어가고

가을바람에

나무는 오스스 떤다.

달빛은 빛나고

지평선은 달아나고

그리고 이제 밤이다.



저는 전집으로 나온 그의 글들을 다 읽었고 올해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완성되지 못한 <최초의 인간>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10년을 제 책상 옆에 늘 놓았다가 용기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1960년 1월 4일 오후 2시경 동승했던 승용차가 5번 국도 빌블르뱅에서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천재 작가는 47세의 짧은 생을 살며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주검이 된 카뮈의 호주머니에는 쓰지 못한 기차표와 검은색 가방이 있었습니다. 그 가방에는 지금 제 앞에 놓여있는 <최초의 인간> 미완성 초고가 있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이 출판된 것은 그로부터 34년 뒤인 1994년 4월이었는데, 책을 열어보면 첫 페이지에 “중계자: 카뮈 미망인”이라는 글과 함께 “이 책을 결코 읽지 못하는 당신에게”라는 헌사가 있습니다. 중계자와 헌사의 대상자는 모두 잘 듣지 못하고 문맹이셨던 카뮈 어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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