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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태양의 후예

by 알베르 카뮈

카뮈가 29살에 <이방인>을 발표했을 당시, 프랑스 대표 비평가 롤랑바르트는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작품이라고 평하였습니다. 기존 문단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향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을 예언한 비평이었습니다. 이후 5년 뒤 <페스트>까지 연이어 히트를 치며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에 카뮈 열풍을 불러일으킵니다. 지금의 연예인들과 같았던 작가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쳤고, 하루라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지 않는 곳으로 피신하고 싶었던 카뮈는 그의 절친과 여행을 계획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잠시 여행을 갔을 때 쓴 글과 사진작가인 친구의 사진으로 구성된 작품 구상집이며, 친구와의 소중한 시간을 간직하고 싶었던 비밀노트였습니다. 사진은 친구인 사진작가 앙리에트 그렝다가 여행을 다니며 찍은 것이고 그 사진들을 보며 친구와의 프로방스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카뮈가 쓴 글입니다. 르네 샤르가 30개의 사진과 30개의 카뮈의 글로 편집하였습니다. 잠시 휴식의 만족감 때문인지 여행을 하면 할수록 카뮈는 지중해의 사유를 영상, 초상, 풍경들로 풀어냈고, 읽어 내려가는 독자들은 강렬한 기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이 글로 옮겨지면 이런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 연신 감탄하게 됩니다. 이 글들을 통해 후에 발표하는 책들의 아이디어적인 글들이 남아있고, (그토록 카뮈가 쓰고 싶었지만 완성하지 못한 장편 <최초의 인간>), 카뮈의 다듬어지지 않은 바로 나온듯한 날것의 글들이 사진과 어우러져, 보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P : 사나운 하느님이신 미스트랄 바람이 제 땅의 주인이라 호령하며 분다, 사이프러스나무는 버티거나, 아니면 꺾어진다. 그러나 포플러나무의 긴긴 오열은 바람의 힘을 풀어헤쳐 소진시킨다. 한쪽은 의로움을 가르치고 다른 쪽은 부드러움의 끈덕진 힘을 가르친다. 그대들이 세워놓은 도시들과 학교들은 무엇에 쓸까?      


P : 여린 빛 속에서 겨울은 건조하리라. 태양의 땅에서 8월은 색채들을 이울게 하지만, 추위는 찬란한 빛을 발하고 하늘은 눈빛으로 푸르다. 검은 여름과 황금의 겨울, 진정한 힘은 두 얼굴을 지녔다.     


P : 끔찍한 일을 겪고 있을 때에는 그걸 겪고 있는 중이기에 그것이 진정으로 끔찍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을 이야기로 옮길 때는 그 일들이 이미 끝나버린 것이기에, 그 일들 위에 이슬과도 같은 것이 덮여 있기에 너무나도 좋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끔찍한 일이 일상사 같아만 보이는 것이었다.          



이 책은 우연의 불씨가 만들어낸 찬란한 불꽃 중의 하나입니다. 역자인 김화영 교수님이 우연한 기회에 파리의 친구 집에서 이 책을 발견합니다. 희귀본으로 출판된 미발표작을 출판사와 오랜 협의 끝에 번역, 출판이 됩니다. 이 책은 프랑스어판을 제외하면 한국어판만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됩니다. 카뮈의 간결한 문장의 특징인 비약과 생략이 긴 여운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섬광처럼 강렬하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생기는지 보여줍니다. 사진 하나하나에 대한 카뮈의 시적 텍스트는 아름다움을 넘어서 예술로 다가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역자가 너무도 친절하게 카뮈의 간결한 문장에 대한 주석들을 달아 놓아서 카뮈 본연의 간결함을 다소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감히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어보시는 분들에게 주석 없이 한번 읽어보시고 그다음 주석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카뮈 전집을 23년 동안 번역해 완성해 주신 김화영 교수님의 노고를 우리는 한 번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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