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감상문

19호실로 가다

by 무무

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문예]


책을 인터넷으로 사는 요즘, 퇴근 후 집 앞에 놓여있는 택배는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은 당일 배송도 가능한 시대이지만 해외에 있을 때는 그 기다림이 설레기도 했었습니다.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도리스 레싱은 마지막 인터뷰에서 “평생 제일 좋았던 날은 책이 도착하는 날들”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을 따라 아프리카에서 살았고 영국에서 책을 친척들이 보내주고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그녀가 책을 받을 때의 기쁨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이란이 아닌 페르시아 제국일 때 태어난 역대 최고령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녀의 인상은 글과 달리 너무나 푸근합니다. 그녀의 글은 인자한 할머님이 아닌 주제성을 가지고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전사 같습니다. 이상하게 책은 몇 권 집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에 잘 잡히지 않던 그녀의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건 이 책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단편이고 여러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글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착각 속에 저지른 일이었는데 이 안에 글은 생각을 많이 하게 하였습니다.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은 40대의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자신만의 어떠한 공간을 갖기를 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작은 호텔의 19호실을 발견하게 된 그녀는 그 19호실을 찾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가 돌아오고는 합니다. 평범한 남편, 평범한 날들, 평범한 네 명의 아이들 속에서 살던 그녀에게 19호실은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하며 시작하지만 어이없는 비극으로 끝나버립니다. 바람이 났을 거라 의심한 남편의 끈질긴 추적 덕분에 그녀의 19호실은 비밀스러운 아니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훼손당합니다. 그녀는 어느 날 그냥 별다른 설명 없이 19호실로 들어가 가스를 틀어놓은 채 영원히 그 공간 속에 잠이 들어 버리는데 가질 수 없던 공간과 내밀한 시간을 죽음으로써 영원히 갖게 되었다고 작가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었지만 아직도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나에게 19호실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죽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아보기 위해서 저만의 심리적, 공간적 의미의 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편을 읽고 두 권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한 권은 <주홍글씨>인데, 그 책에서 나오는 말 중에 하나인 “마음의 성역”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최소한의 영역인데 개인의 사생활이나 역사 등등이 해당됩니다. 19호실에서의 주인공에게는 그만큼 존중되지 못했고 오히려 피해를 보게 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떠오란 책은 <자기만의 방>이었습니다. 자신만의 방을 가지려 끊임없이 투쟁하라고 외치던 그 책이 떠올랐습니다.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심적인 공간을 만들라는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이 났습니다.


P <19호실로 가다>

그 모든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누군가의 잘못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고, 탓할 사람도 없고, 내 잘못이라고 나설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다만 매슈가 원하는 만큼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했을 뿐. 수전이 위험할 정도로 공허할 때가 늘어났을 뿐. (그녀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대개 정원에 있을 때였다. 그래서 아이들이나 매슈가 함께 있을 때가 아니면, 정원을 피하게 됐다.) ‘부정’이라든가 ‘용서’ 같은 극적인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지성이 그런 단어들을 금지했다. 지성은 싸움, 삐치기, 분노, 속으로 침잠한 침묵, 비난, 눈물도 금지했다. 특히 눈물을 금지했다.


<19호실로 가다>의 제목의 책이 국내에 2권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책은 도리스 레싱 단편집 11개의 작품이 있는 최근에 나온 책이고 다른 하나는 민음사에서 1994년에 출간한 세계 페미니즘 단편선인데 도리스 레싱뿐 아니라 여러 작가들의 글이 실려있는 책입니다. 사람들은 레싱이 페미니즘 작가라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그녀는 개인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라고 외치는 사람으로 저는 기억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