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Jul 23. 2023

고슴도치의 우아함

by 뮈리엘 바르베리

아는 프랑스어라고는 paris 밖에 없을 정도로 무모하게 프랑스어를 도전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모하고 무지했었지만, 다행히도 좋은 교수님을 만나 재미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대학시절의 한 추억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프랑스어와 철학을 같이 가르쳐주시던 교수님을 만나 학생들에게 책을 한 권 추천해주었는데, 지인의 책이라며 이 책을 보여주셨습니다.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르몽드>지에서 1면을 할애한 페이지를 복사해서 나눠주셨고 단어나 문법만 가르쳐 주시던 교수님은 지인의 기사를 수업과 상관없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2006년 8월 발간된 후 30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책이자 2007년에는 영어권 국가에서도 책들이 번역이 되어 거의 100만 권을 일 년도 안 된 시기에 돌파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계 23개국에서 번역이 기다리며 나올 예정이었는데 몇 년 뒤 우리나라에서도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던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중년의 수위 아줌마와 열두 살 천재 소녀의 세대와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우아하면서도 철학적인 문체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프랑스 최고의 상류층이 모여 사는 파리 그르넬 가 7번지입니다. 7층짜리 최고급 아파트에는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 사업가, 요리비평가 등 상류층들이 모여 삽니다. 27년째 수위로 살아온 주인공 르네는 과부에다 못생기고 오동통하며, 초등학교도 안 나온 가난뱅이입니다. 그는 남들이 수위에게 기대하는 모습대로 보이고자 스스로를 가장하지만, 사실 그의 내면에는 중세 철학자를 깊이 이해할 정도로 박학다식한 지성과 감성이 숨어 있습니다. 6층에 사는 팔로마는 국회의원 아버지에 문학박사 어머니, 파리 고등사범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인 언니를 둔 10대 소녀인데, 그 역시 천재에 가깝지만 세상에 실망해 열세 살 때 자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작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프랑스 상류사회의 허위의식을 꼬집고, 부와 학력이 지성의 척도인 양 타인을 재단하는 사람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려 나갑니다.


두 사람을 영혼의 파트너로 연결해 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새로 이사 온 일본인 가쿠로 오즈입니다. 성공한 사업가로 문화와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깊습니다. 그는 고슴도치처럼 날 선 외피 속에 감춰진 르네와 팔로마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이 아파트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르네는 오즈 덕분에 유년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고, 팔로마는 또 르네 덕분에 세상을 더 살아볼 만한 곳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작가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문학, 철학, 음악, 미술, 영화를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과 사유를 땀땀이 수놓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인문학적 이해와 문화, 예술에 대한 조예가 어느 정도 있어야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책을 읽고 언급했던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P :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사물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 본질적인 생명과 숨결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나 사물은 영혼도 없는 꼭두각시인 것마냥 말만으로 모두 파악할 수 있을 것같이 한평생 자기들의 주관적인 영감에 취해 마구 글을 써대는 것이다.



바르베리는 어느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라벨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엘리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라고 이야기하며 전통적으로 위대한 지성인과 예술가를 내세우는 문화가 고착화되어 있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으로 저급한 직종의 사람은 무식하며 고급문화를 접할 수 없다는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르네의 삶을 밀도 있게 그리기 위해 실제 수위들을 여러 명 만나 보았고, 그 과정에서 르네처럼 혼자 문학을 공부하고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문화에 대한 사랑이 훨씬 깊다는 것을 알았기에 원래 그리려고 했던 주인공을 지우고 르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