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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26. 2023

나는 기억한다

by 조 브레이너드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냥 쓰라고 이야기하면서 조금은 무책임해 보이는 말을 먼저 건넵니다. 하지만 사실이기에 그 말을 먼저 던진 후, 저는 책 3권을 소개해줍니다. 한 권만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에 고민을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려는 찰나에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단연 이 책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이 번역이 되기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작가의 이름을 한 뉴욕의 조그마한 갤러리에서 보게 되었고, 책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늘 번역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외국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문필가)가 쓴, 그렇다고 형식이나 뭐라고 규정하기 힘든 장르의 책이 소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작가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기에 번역은 힘들 거라고 여겼지만, 다행히 그의 저작권은 살아있었고 몇몇 사람들의 눈에 띄어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무척이나 단순합니다. 번역가님이 많이 고심했을 거 같은 “I remember(나는 기억한다)”가 반복되는 원문의 구조에 충실하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P : 나는 기억한다, 단 한 번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았던 때를.


167쪽짜리 책 한 권이 온통 이런 짤막한 기억들로 이어집니다. 앞뒤의 일이 반드시 기억나는 것은 아니어도 결국, 열렬히 기억하고 있는 어떤 순간들로 지탱되고 맥락을 갖으며 살아갑니다. 반복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이 있으면서 평이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원문이 주는 친숙함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작가의 기억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사람들 대부분에게 차마 말 못 할 부끄러운(때로는 성적인)것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그 모든 기억을 폴 오스터의 말마따나 “온화하고 젠체하지 않는 태도와, 세상이 그의 앞에 내놓은 모든 것에 대한 차분한 관심으로” 씁니다.      


그의 기억은 우리에게 우리들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것을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장으로 써보도록 부추기는데, 실제로 미국의 많은 교사들이 “나는 기억한다.”라는 형식을 글쓰기 수업에 활용한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학생뿐 아니라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작가님들 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픈 욕망을 가지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P :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불속에서 손전등을 켜놓고 읽던 책들을.


P : 나는 기억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새 글을 쓰고 맞던 아침을.


P : 나는 기억한다, 내가 처음으로 받은 원고료를. 그때 나는 평생 이렇게 먹고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 생각을 후회하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P : 나는 기억한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 이해해보려 했던 것을(산다는 것 말이다).



글을 쓰기 망설여지시는 분들은 책상 앞으로 가서 노트를 펼치거나 혹은 빈 문서파일을 하나 열어 “나는 기억한다.”를 한번 써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나의 기록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한 사람의 기억이나 삶을 되짚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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