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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28. 2023

번역예찬

by 이디스 그로스먼

2012년 대한민국 출판계에 자그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논란이 된 책은 강신주 작가님의 책 <김수영을 위하여>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는 그저 평범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책 표지에는 작가와 같은 사이즈의 편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본래 편집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저자의 뒤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통이 있는데, 그런데 강신주 작가님은 반드시 편집자를 저자와 동일하게 위치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편집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 사건은, 책 출간에 있어 편집자의 위상을 드높여준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한편 책 출간에 있어서 편집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더 있습니다. 바로 번역가입니다. 특히 해외 원서를 번역할 경우 번역가는 기획은 물론이고 편집까지 수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편집자와 버금갈 정도로 책 출간에 있어 번역가가 차지하는 위상은 엄청나지만 실상은 형편없는 대우를 받습니다. 물론 번역가의 이름은 항상 저자와 동일한 위치에서 소개되고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번역가가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능력과 영향력에 비해 우리들이 잘 모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책은 현역 최고의 번역가로 칭송받는 이디스 그로스먼을 통해, 이런 번역가의 입장을 전적으로 대변하며 나아가 번역을 옹호하며 예찬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번역가는 단순히 다른 나라 말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작가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창작이 필요한데 과연 ‘번역을 창작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저자는 번역가가 하는 번역은 작가가 하는 창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 최초의 사람이었고 새로운 지평을 연 번역가입니다.     


저자는 이런 생각과 비슷한 이유로 번역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문학적 생각, 통찰, 직관의 자유롭고 필수적인 교류가 번역을 통해서 활성화되고 촉진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번역은 문학을 통해 다른 사회, 다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탐구하는 능력을 키워주어, 잠시나마 다른 삶을 살게 해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절대적이지 않은 이 사회에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가장 효과적이며 필수적인 방법이 바로 번역이라고 이 책에서 강조합니다.           



P : 언어란, 그게 무엇이든 비언어적 세계에 대한 번역이며, 한 언어의 기호와 구절은 다른 기호와 구절을 번역한 것입니다. 문학은 하나의 번역 과정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상상하는 내용을 변형하고 구체화해서 문학적 가공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말을 외국어로 재현하려는 번역가의 분투는 사실상 작가가 처음 비언어적 실체를 언어로 옮기려 기울인 노력의 연장입니다.     


P : 문학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유와 측면에서 번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의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예술적 충동과 예술에 대한 욕구는 억누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거의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우리를 떠난 적이 없으며, 문화나 관습, 기대치에는 큰 변화가 있을지언정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 어디에든 존재합니다. 문학이 있는 곳에 번역이 있습니다. 문학과 번역은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와 같아 절대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매끄럽지 않은 번역을 보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우리나라는 번역이 소외되고 경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번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 양질의 번역본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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