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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01. 2023

문맹

by 아고타 크리스토프

1935년에 전쟁이 막 시작될 무렵에 그녀는 태어났습니다. 네 살 때부터 인쇄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읽은 그녀는 어쩌면 작가로서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읽기는 말하기로, 말하기는 쓰기로 자연스레 옮겨 갔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지은 이야기를 말하는 걸 즐겼는데 열네 살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가며 시련을 맞게 됩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절대 침묵을 해야 하는 학습실로 가야 했고 그저 묵묵히 모든 것을 적고 계속 읽으면서 그녀의 문장들을 묵묵히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전쟁이던 불행한 시기에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다가옵니다.


우리들과 같이 그녀도 당연히 하나의 언어밖에 할 수 없었는데 그녀는 아홉 살 때 인구의 4분의 1이 독일어를 쓰는 국경 도시로 이사를 갑니다. 1년 후 러시아 군인들이 헝가리를 점령했을 때 러시아어가 의무화되었고 스물한 살 때는 혁명의 여파를 피해 정치적으로 연루된 남편과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가족이 정착하게 된 뇌샤텔이라는 도시는 프랑스어를 쓰는 곳이었습니다. 그녀는 읽고, 말하고, 쓰는 행위가 가장 중요했기에 프랑스어를 배워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프랑스어로 말은 하였지만 읽지는 못했습니다. 네 살부터 읽을 줄 알았던 그녀는 다시 문맹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해 2년 후 훌륭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프랑스어로 말한 지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여전히 실수를 하고 사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어 또한 독일어와 러시아어처럼 이 책에서는 그녀에게는 그저 ‘적의 언어’라 부르게 됩니다. 그렇게 쓰게 된 이유는 아마도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프랑스어를 쓸 수밖에 없었고 작가가 되게 한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운명, 우연, 상황에 의해 그녀에게 주어진 언어이자 그녀에게 영원한 무한도전인 것입니다.



P :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P : 어제, 모든 것은 더 아름다웠다.

나무들 사이의 음악

내 머리카락 사이의 바람

그리고 네가 내민 손 안의

태양.


P : 처음에는 하나의 언어밖에 없었다. 사물들, 어떤 것들, 감정들, 색깔들, 꿈들, 편지들, 책들, 신문들이 이 언어였다. 나는 다른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인간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아주 짧게 간추려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인생을 훑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자전적 이야기에 가까운 언어 자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헝가리어에서 독일어로 러시아어로 프랑스어로 의무화된 언어가 바뀌는 과정이 곧 인생이었습니다.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단순하고 단편적이고 단조로운 그녀의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문체일 뿐, 그녀의 글에는 깊이가 전해집니다. 이면을 살피고 여백을 들여다봐야 하는 그녀의 전쟁 같은 언어와의 사투를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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