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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01. 2023

가재가 노래하는 곳

by 델리아 오언스

살다 보면 불편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지만 그럴 때마다 왜 이리 더디게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스트레스가 가득한 때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편입니다. 매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 동안에는 짓눌렸던 무엇인가가 생각나지도 않고 의외의 포인트에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모든 걸 잊을 만큼 소중한 시간을 만들고 나면 더디게 갔던 흐름이 뒤바뀌었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작가나 재밌게 읽었던 책을 붙잡고 하루를 마무리를 한다면 그 하루만큼은 영원히 기억이 될 만한 그래서 추억이라는 멋진 서랍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거 같습니다. 이 책을 제가 접했던 순간이 힘든 시기에서 멋진 하루를 마무리를 하면서 봤습니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어느덧 읽다 보니 도저히 중간에서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 빨려들 듯 읽다 보니 몇 시간 뒤에 출근을 해야 했던 아찔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는 생태학자입니다. 일흔에 처음 쓴 첫 소설인데 출간하자마자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27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을 기점으로 북클럽을 운영하는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추천사가 한몫을 더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매력을 알릴 수가 있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나타난 묘사가 생생해서 역시나 위더스푼이 영화로 만든다고까지 합니다. 위더스푼은 괜찮은 원작을 발견해 영화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데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도 그녀가 제작하고 주연까지 했었습니다.


이 책은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평생 생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을 다 풀어놓았습니다. 소설가 같은 능란한 필치까지 묘사가 매혹적이고 시적이라 읽는 이들로 하여금 므흣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모래와 진흙 위 발자국을 찾는 장면에서  “모래는 진흙보다 비밀을 잘 지킨다.”으로 아름답게 문장을 만들어 내는 식으로 글을 씁니다. 자연을 잘 아는 데다 통찰력까지 갖춘 이가 쓴 문장을 읽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생명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독립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막 세상에 나왔을 때의 얼마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스스로를 먹여 살리며 생존하는데 거의 유일하게 인간처럼 오랜 기간 부모가 돌봅니다. 우리랑 다르게 살아온 주인공 카야를 보면 야생에서 혼자 자란 그녀는 그저 생명 그 자체로 보입니다. 자연과 더없이 어울리는 그녀에게도 사랑이 찾아옵니다. 그 사랑 덕분에 카야는 글을 배우고 사람을 받아들이며 메기 등 습지 친구들을 그리는 재미에 빠집니다.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카야의 그림 솜씨는 대단히 훌륭해서 책으로도 출판됩니다. 과학자들은 일반인의 눈으로 봤을 때 보통은 논문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생태학자인 그녀는 왜 소설로 이야기를 걸어왔을까 궁금했는데 답은 역시 책 안에 있었습니다.



P :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들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춰보는 일이다.



스스로 제인 구달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가끔 생명으로부터, 우리 본성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연을 벗 삼아 그 야성이 살아 있는 곳에서 사람이 쓴 이 매력적인 책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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