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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07. 2023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by 진 리스

이 책이 유럽에서 유명한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인 에어>와 대척점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제인 에어>는 역경들을 이겨내고 당시의 사회에서 당당히 우뚝 일어선 멋진 캐릭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완성시킨 건 눈이 멀고 팔까지 잃은 로체스터를 당당히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여 포용하는 모습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로체스터를 그렇게 장님으로 만든 버사라는 그의 부인은 혐오감 가득한 악의 화신 같이 여겨져 왔습니다.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읽은 진 리스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녀를 혐오스럽게 생각할 때 비판적인 눈으로 브론테의 글을 읽었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 책을 써서 발표합니다. 주인공들의 사랑을 위해 제물처럼 희생된 버사를 중심으로 한 이 책은 제인과 대립되는 인물인 버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크리올 출신인 버사는, 실제로 크리올들은 유럽 백인들에게 인종 차별을 받았고, 특히 여성 크리올들은 인종뿐 아니라 성에 따라 이중적으로 차별을 받았었습니다. <제인 에어> 속에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던 이들은 백인 여성뿐이었습니다. 이 작품 이후, <제인 에어>는 인종 담론에 있어서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듣게 됩니다.      


노예해방은 이루어졌지만, 정작 여성들의 해방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르가소 바다는 유럽과 서인도제도를 가르는 바다이며 항해하기 힘든 곳입니다. 저자는 영국제국과 식민지,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의 갈등을, 다리를 놓을 수 없을 만큼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로 표현하며 당시 사회 문제를 제기합니다.



P :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 거예요. 항상


P : 이제 드디어 나는 내가 왜 여기에 끌려왔는지를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도 알았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왔는지 촛불이 깜박거렸고, 나는 촛불이 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손으로 바람을 막아주자 촛불은 다시 살아나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이 캄캄한 길을 밝혀 주기 위하여.



작가는 16세가 되었을 때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낯선 문화와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그녀는 배우가 되려고 예술 공연학교로 전학했으나 슬프게도 재능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코러스 걸, 마네킹, 그림 모델 등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게 되고 결혼도 했으나 파경에 이릅니다. 그 후 작가가 되어 <왼쪽 둑>, <사중주>, <맥켄지 씨를 떠나고 난 후>, <어둠 속의 항해>, <한밤이여, 안녕>, 등의 작품을 썼으나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와중에 전쟁까지 발발했고, 작품들은 모두 절판됩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마터면 재능 없는 배우, 인기 없는 작가로 이름 없이 사라졌을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재발견됩니다. 1958년 영국 BBC 방송에서 <한밤이여, 안녕>을 극화하면서 사망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진 리스의 행방이 밝혀졌고, 그녀가 76세에 발표한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그녀에게 너무 늦었지만, 작가로서의 명예를 안겨주었습니다.(78년 대영재국 훈장을 받습니다.) 온갖 차별과 자그마한 행운조차 따라주지 않았던 작가는 평생 글을 씁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훌륭한 와인이 창고 속에만 있다가 꺼지기 직전 자신의 능력을 한잔에 증명하듯 그녀는 인생 말년에 불꽃을 태우며 명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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