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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09. 2023

프래니와 주이

by J. D. 샐린저

일본어판을 번역한 하루키는 이 책을 처음 접하고 4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소설을 납득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독자들에게는 젊은 대로, 성숙한 독자들에게는 성숙한 대로 읽히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이라며 단연코 그의 인생책이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생전 발표했던 중단편 <프래니>와 <주이>를 <프래니와 주이>로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200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저한테는 너무 좋으면서도 쉽지 않았고 처음으로 읽은 직후에 바로 책 첫 장을 열게 하였던 책이기도 합니다. 진행 속도가 워낙 빠르고, 기분을 좋게 하기는커녕 작가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그래서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듯해서 조금은 지치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확실한 건 왜 하루키가 샐린저에 빠져버렸고, 특히 이 작품만은 자신이 번역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은 매력적인 책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샐린저가 쓴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프래니와 주이>도 자전적인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마찬가지로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숙한 인물이 주인공이고, 그 주변엔 허위로 가득 찬 기성세대가 있어 끊임없이 잔소리를 쏟아냅니다. 프래니와 주이 또한 어른들의 세상에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하루키가 말한 것과 같이 젊은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따뜻하지도 않고 오히려 차가운 진실을 조언해주는 작가는 주이의 시선을 통해 메시지를 던집니다. 불안정한 심리 상태의 동생 프래니에게, 모든 것이 맞지 않는 어머니에게,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너무나 잘 아는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카페와 욕실 그리고 작은 방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추상적이고 전투적인 논쟁을 벌이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수의 인물들이 극단적인 갈등을 표출하고 이내 봉합된다는 점에서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합니다.



P : 제대로 된 예술품이 다 그렇듯, 말로만 나불나불 의연하고, 대개는 허울뿐인 온갖 평가에 취약하다.


P : 좋고 싫은 게 그렇게 확실해선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단다.


P : 네가 너 자신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 다른 사람들을 탓한 것이 완전히 잘못되었어.



샐린저는 자신을 철저히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1965년 <햅워스 16, 1924>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해인 2010년까지 코니시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며 언론은 물론이고 문단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습니다.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65년 이후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매년 30만 부씩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우는 시점에서 은둔을 해버려서 출판사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격은 많이 괴팍했다고 했는데 그 성격은 자신의 책을 출판할 때마다 편집은 물론 표지 디자인과 홍보 방식까지 하나하나 간섭하고 통제했습니다.      

대중매체에 자신에 대한 개인정보가 오르내리는 일에 질색해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샐린저 전기>라는 책이 발간되자 저작권 및 사생활 보호를 명목으로 책 속의 편지, 신상정보, 자신이 언급된 인터뷰 기록을 모두 삭제시켰습니다. 또 으레 책날개에 등장하는 작가 사진이나 약력이 빠지고 옮긴이의 말과 같은 해설도 없습니다. 표지에는 텍스트로만 디자인을 구성해 달라는 셀린저 에이전시의 특별 요청이 있었고, 작가의 산물로서의 작품이 아닌 작품 그대로를 봐달라는 샐린저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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