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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23. 2023

유리 궁전

by 아미타브 고시

아무래도 조금은 생소한 이 작가를 알게 된 건 2018년 <박경리 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한 박경리 작가님의 문학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된 이 상은, 국내외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문학상입니다. 최인훈 작가의 수상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꾸준하게 해외 작가들에게 수상을 하였고, 지금은 아쉽게도 그 명맥이 끊겨서 아쉽습니다. 다섯 작품의 후보들에서 낯선 이 작가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 놓았고 우연히 들렸던 서점에 만난 작가의 이름에서 바로 제 책장으로 옮겨 올 수 있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이 책을 읽고 그의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게 되었는데 왜 <박경리 문학상>에 언급이 되었는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미타브 고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영웅들이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대개 일반 민중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 5년의 현장조사와 치밀한 고증을 거쳤다고 합니다. 제국주의 침략, 식민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독립과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는 인도와 미얀마의 역사적 혼란을 다룬 대서사시입니다. 참혹하고 암울하지만 어쨌든 진보하는 역사와 생경한 현실의 물결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개인의 운명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에게도 일제의 침탈과 전쟁, 탈식민주의와 정체성 혼란, 독립운동 등을 몸소 경험한 과거가 있기에 이 작품이 주는 감동이 크게 남다르지 않았습니다. 크고 복잡한 역사의 물줄기를 묘사하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전쟁의 참상과 파괴에 대응하는 개인들의 몸부림을 더욱 실감 나게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을 동양의 ‘닥터 지바고’라고 인디펜던트는 평하기도 했습니다.

P : 아르준과의 만남은 디누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처음으로 디누는 아르준이 내린 결정의 필연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왜 많은 사람들이 아웅 산과 같은 선택을 했는지 알았다. 디누는 그들을 몹시 비난했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압박받는 민족과 나라를 위해 싸운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어떻게 판단해야 옳은가? 어떤 근거에 입각하여 판단할 때, 그들의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거부할 수 있을까? 동포가 아닌 다른 누구가 그들의 애국심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인도인들이 아르준을 영웅으로 여기고, 또 버마 사람들이 아웅 산을 구원자로 본다면, 과연 디누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념을 반복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게 해주는 더 큰 역사적 진실이 과연 있을까? 디누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인도양을 둘러싼 남아시아 국가들의 아픈 역사와 다양한 민족, 특히 평범한 인물의 애환을 다룹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런 주제는 결코 기획된 벤처도 아니었고 의식적인 프로젝트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벵골만, 아라비아해, 인도양 그리고 그것들을 이어주는 땅들은 언제나 나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의 소설들이 지닌 식민지의 후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로서의 가치는 부차적 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이나 굶주림, 자연재난 등에 직면해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민족들, 그렇기에 흔들리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고향이나 고국이 개인에게 주는 의미, 갈수록 인류의 삶을 옥죄는 불확실성과 불예측성 등등 이러한 이슈를 더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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