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타는 할아버지와 그 휠체어를 미는 할머니
누군가가 제게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으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문희 님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외모와 그 연기력을 방출하는 분들도 대단하지만, 나문희 배우님이 저에게는 가슴속의 별로 남아있습니다. 제 기억 속의 그녀의 첫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어머니와 봤던 짧은 4부작 드라마였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제 눈을 적시는 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마음마저 훔쳤던 기억이 강렬히 남았는데, 그 이후 저는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빠지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호박고구마를 좋아하시지만 (저도 좋아합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그녀의 연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가슴이 따스해졌습니다. 노희경 작가님도 아마 저와 같은 매력을 느끼셔서 그런지, 그녀의 캐스팅 섭외 1위는 항상 나문희 배우님이었고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많이 배웠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잘난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마. 희경 씨.”
“책 많이 읽어. 희경 씨”
“버스나 전철을 타면서 많은 사람을 봐. 희경 씨.”
“재래시장 많이 가. 희경 씨.”
“시장에서 야채 파는 할머니들의 손을, 주름을 봐. 희경 씨.”
어느 한 방송에서 노희경 작가에게 해줬던 이러한 말들은 저에게 고스란히 하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저도 사람들을 지켜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제가 사는 집 앞에는 공원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운 조그마한 벤치 3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늘 모이는 이곳에는 길 고양이들의 터전이 되었고, 저를 포함 삼삼오오 돈을 모아 그 고양이들에게 조그마한 터전과 밥을 주기도 하는 곳입니다. 저는 햇빛이 드는 날에 이곳에 나와 책을 읽기도 하고 지나가거나 잠시 머무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할머님들에게서 사람 사는 이야기도 듣기도 하면서 쉬는 날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님이랑은 단 한 번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사를 오고 3년이란 시간을 지내면서 이 두 분과는 그저 “안녕하세요.” 정도로만 인사를 했지, 그 이상은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보이시는 할아버지와 휠체어를 끌기에도 벅차 보이는 할머니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하루에 두 번씩, 이렇게 길거리에 나섭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커피를 드리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습니다.
할아버지는 87세 김 xx시고 할머니는 88세 이 oo 십니다. 말씀을 잘하시는 할아버지가 대화를 리드하셨고 저는 듣고 그 이야기에 심취했습니다. 이 두 분은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옆에 있었다고 하십니다. 옆집에 서로 살았기에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고 자라셨고 그냥 옆에 있으신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라시다가 중학교를 다니시던 때에 전쟁이 났고 할아버지가 징집을 피하기 위해 두 분은 결혼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셨지만 옆에 있는 게 서로가 당연했기에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셨고 아들 넷 과 딸 둘을 키우시고 지금은 모두 서울로 내보냈다고 자랑스러워하시며 여느 부모님처럼 자랑스럽게 한분 한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나서부터 걷는 게 불편하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도 심하지는 않지만 병원에서 치매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같은 곳만을 늘 도십니다. 마지막 저희 집 앞 벤치에서 잠시 쉬시는데 늘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하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쉬십니다. 할아버지는 오래된 검은색 라디오를 들고 다니십니다. 그리고 같은 노래를 크게 트시는데 백설희 님의 <물새 우는 강언덕>을 들으십니다. 할아버지는 지겨워서 딴 노래를 듣고 싶지만 할머니가 기억하고 웃으시는 노래가 이 노래이기에 이 노래만 튼다고 하십니다.
다음 주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약속을 잡았습니다. 자장면을 먹고 싶은데 누군가 자기 집으로 오면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통에 배달을 시킬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덩치 큰 저를 보고도 놀라지 않으셔서 우리들은 다음 주에 만나서 같이 탕수육에 군만두까지 먹자고 하였습니다. 제가 쏜다고 하고요. 오늘은 짧게 십 분 정도로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몸은 두 분 다 불편하시지만 늘 웃고 즐겁게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시는 할아버지와 그걸 들으면서 천천히 휠체어를 미시며 온화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 비가 조금씩 내리는 이 새벽에도 떠나지 않고 늘 각인이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