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 EP 02

주문을 잊어버리는 서점 주인

by 무무

60년 만에 단풍이 없는 가을이 왔다고 말씀하시며 오래된 헌책방의 할머니는 난로를 꺼내야 하나 고민을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아마도 그 60년 전에도 올해와 비슷한 가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없는 날들을 보냈을 겁니다. 언제나 바뀌지 않는 이곳 풍경 속에서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그건 계절에 따라 난로가 있느냐 선풍기가 있느냐의 차이 밖에는 없습니다. 항상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항상 시청하고 계십니다. 인사를 두 번 정도 하면 그제야 웃으시면서 반가이 맞아주십니다. 저도 늘 그렇듯 할머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따라 건넵니다.



“할머니, 저번에 주문한 책 왔어요?”



제가 찾는 오래된 책이 있습니다. 1970년대 즈음 쓰인 책으로 아마 제 인생 처음으로 밤을 새우며 읽었던 장편소설이라 새로운 판본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그 시절의 그 책을 찾으려 이 서점에 들릅니다. 할머니는 늘 다시 이름을 묻고 매번 달라지는 노트에 책 이름을 옮겨 적으십니다. 그러고 나서 주전자에 물을 올리시고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붓고 주전자에서 흘러나오는 삑삑 하는 노랫소리를 기다립니다. 기차의 기적 같은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넣어 저에게 한잔 먹으라며 건네주십니다.


이 서점은 몇 시에 여는지 몇 시에 문을 닫는지 일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날에는 새벽에도 문이 열려있고 어떤 날에는 오후 3시에도 문이 닫혀 있기도 합니다. 1929년생이신 할머니 마음이라 누구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서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한 번은 할머니네 서점 책으로 공부를 하고 몇십 년 만에 찾아오는 손님도 오갔고, 중앙시장 아주머니들이 커피 한잔 먹으려 오시기도 하고, 아이들이 만화책을 찾으러 삼삼오오 모여서 안 그래도 좁은 서점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의 수다쟁이 열리는 따스한 쉼터로서도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서점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할머니는 춘천 명동에 서점 하나와 강원대학교 근처에 서점 이렇게 2개를 6.25가 일어났던 순간에도 하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되었냐는 질문에 우리 근현대사가 나와서 입을 떡 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던 잔상이 계속 남아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책과 함께 살고 계신 할머니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중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세대의 어르신들이 그러셨듯이 가족들을 위해 사회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서점을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를 만나 같이 운영을 하게 되었고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책을 읽으시냐는 말에 읽고는 싶지만 힘들어서 지금은 TV를 보시는 것이 더 좋다고 솔직하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저 할머니 안 계시면 안 올 거예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명동에 있는 서점을 문을 닫는 거를 보시고 많은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책을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는 걱정스럽다는 제 질문에 그래도 읽는 사람들은 읽고 있고 자신이 70년 동안 서점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시간을 느끼셨는지 할머니 없으면 안 온다는 손자뻘 되는 손님의 핀잔에 웃으시며 자신의 딸들이 돌아가면서 돌보게 할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와도 기억을 못 할지도 몰라.”



매번 서점 문을 나설 때마다 듣는 할머니가 웃으시며 건네는 인사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찾아가는 서점인데도 불구하고 주인 할머니는 같은 말을 하십니다. 저를 매번 기억을 못 하시고 인터넷으로 마음먹고 찾으면 찾을 수 있는 책을 3년 동안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있지만 그저 여기가 좋아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들립니다. 책이 영원히 안 와도 좋으니 그저 할머니께서 오래오래 건강히 서점을 운영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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