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소세키나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을 쓴 호프만처럼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어쩌면 고양이에게 말을 걸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망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몽상가적인 창의력이 부족한 관계로 그들에게 어떠한 말을 할 수도, 그렇다고 들을 수도 없는 저는, 그저 지켜보고 밥을 주는 걸로 만족을 합니다.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동네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벤치가 있습니다. 동네 주민들의 쉼터이자 약속 시간을 정해놓지 않아도 어느새 만남의 광장이 되어버리는 이곳에 2년 전부터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이름도 없고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 곁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일전에 봤던 고양이들은 사람을 보면 도망을 가거나 어딘가로 숨어버렸지만 지쳐서 그런지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 안전해 보였는지 엄마 고양이는 벤치 옆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사시사철 나무가 있는 그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장미꽃이 필 무렵, 엄마 고양이는 3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낳았습니다. 새 생명의 신비로움과 너무 조그마해서 다들 어쩔 줄 몰라하던 동네 사람들과 저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밥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일 가까운 미용실 아주머니 집에 밥을 갖다 놓기로 결정을 하고 밥그릇과 담요 등을 사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다행히 네 가족은 만족을 하였는지 그 자리에 안착을 하였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벽이고 낮이고 밤이고 그 옆을 같이 지켜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에게 새 이웃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나무 뒤에 숨어서 사람들을 보던 아이들도 엄마 말을 들어서인지 어느덧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서 밥도 잘 먹고 애교도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책 읽으러 나온 저도 책을 덮고 한없이 바라보게 됩니다.
세 아기 고양이가 한 달 즈음 지나갔을 때 두 아이들이 크지 못하였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고양이는 엄마의 보살핌 속에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랐지만 두 아이들은 잘 먹지도 그렇다고 잘 걷지도 못하였습니다. 사진 속 건강한 고양이는 뛰어다니기도 하고 우리들 옆을 지나다니기도 하였지만 한 아이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 오로지 코에 의지해 엄마를 찾았고 다른 아이는 뒷발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질 못해 늘 질질 끌어서 다녔습니다. 어미는 아이들이 자신을 찾아오면 눈이 아픈 아이에게는 눈을 핥아주었고, 다리가 아픈 아이에게는 다리를 핥아주며 온 정성을 쏟기 시작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더 보살펴주려고 서로 노력을 하였지만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날 두 아이는 하루를 사이에 두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예쁜 미소를 머금은 채 짧았던 그 묘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동물단체에 전화를 하였고 그분들은 나와서 종이로 나름 정성스럽게 담아갔습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어미 고양이는 그렇게 떠나보낸 아픈 손가락들이 매일 있던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자신을 자책하며 그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 쇼크였는지 알 수 없지만 엄마 고양이도 아픈 손가락들이 간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길 위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한 고양이만이 우리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P :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나날이 위험이 많아져 방심할 수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열해지는 것도, 표리 두 겹으로 된 호신용 옷을 걸치는 것도 모두 세상 이치를 아는 결과이며, 세상 이치를 안다는 것은 결국 나이를 먹는 죗값이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남겨진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먼저 떠나간 이들의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이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없이, 혹은 가족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사람이나 고양이에게나 버거울 것입니다. 남아있는 자식을 남겨 놓은 채 고양이 별로 돌아간 그 고양이를 생각하며 이 아이만큼은 우리들 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보실 필 것입니다.
가끔 이쁜이가 엄마가 앉아있던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알 수 없으면서도 알 것 같지만 길 위에 존재했던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엄마와 형제들을 그렇게 기억하려고 하는 듯 조금은 가슴 아프게 바라봅니다. 제발 꿈속에서 만큼은 엄마와 형제들이랑 오붓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