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간이역은 설레지만 막상 단어를 꺼내 놓으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저에게는 추억과 여행이 떠오르는 한적한 시골의 낭만적 공간이고 어떤 분들에게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실용적 공간일 수도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산업화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생활의 현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처음 어딘가로 이동을 위해 잠시 스치며 지친 몸을 벤치에 늘어뜨려 놓은 공간이고 기차가 오기까지 쏟아지는 졸음을 받아주는 소박한 장소였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조용하고 정겨운 시골의 허름한 외관을 지닌 추억과 그리움으로 바뀐 지금은 사람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조금이나 즐길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곳으로 원래의 목적과는 조금은 다르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폐역”
사전적 의미는 철도역이나 전철역 등이 더 이상 영업하지 않고 폐지되는 것, 폐선된 철도 노선의 역을 의미합니다. 역이 폐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 해당 역이 속해 있는 노선을 없애거나 이용객 수의 감소, 그리고 역 간 거리 조정 및 선로 이설 등의 이유 등이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김유정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람 이름을 쓴 기차역으로 전에는 신남역으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주변의 김유정 문학촌과 생가 등이 복원이 되면서 개칭을 하였고 많은 기대를 받으며 간이역으로 만들었을 이곳은 옆에 같은 이름의 경춘선이 증/이설 되면서 기차가 더 이상 서지 않습니다.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플랫폼과 울지 않는 스피커”
속절없이 녹슬어 가고 있는 시설물들은 소용이 다했다는 판정을 받고 필요 없어진 것들 특유의 비감함을 느끼게 합니다. 한때는 이곳을 통해 많은 이들이 기대를 품으며 떠나고 다시 그리움을 안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들이 흘린 동경과 그리움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이전과는 다르게 관광지로 변모해 사람들이 찾지만 더 이상 부푼 마음을 안고 사람들이 머무르지 않기에 이상하게 더 외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불현듯 서글픔과 허전함이 밀려들었는데 아마도 잊히는 것만큼이나 잊히는 것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안녕”
우리는 이 말을 반가움에 그리고 헤어짐에 또는 이별에 쓰입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수많은 글 중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이 짧은 두음절의 글자가 눈에 띄어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깨우쳐주기라도 하듯 맹렬히 지나가는 열차의 궤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간이역을 지나왔으며 그중에 많은 간이역들을 기억조차 못하는 폐역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 산울림 <회상>
삶을 여행에 많이 빗대어 이야기들을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을 출발역이라고 한다면 죽음은 아마 종착역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절차라는 말처럼 살아가면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은 열차가 멈춰서는 역들에 해당될 것입니다. 입학과 졸업, 취업과 결혼처럼 인생이라는 여행 중에 큰 역을 지나기도 하고 수시로 만나게 되는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같은 간이역에 잠시 머물기도 하면서 종착역을 향해 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삶이라는 것은 종착역에 빨리 도착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간이역에 들려 더 많은 추억과 그리움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같이 먹었던 식사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그렇게 일상의 간이역이 세워져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 미련도 후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이역”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간이역을 지나왔으며 또 폐역으로 만드셨나요? 저처럼 혹시 너무 많아서 혹은 바쁘다는 핑계들로 그렇게 하나하나 폐역으로 만드시지는 않았나요? 인생이라는 여행 전체가 아무도 서지 않고 누구도 찾지 않는 폐역으로 가득 차지 않게 잠시 뒤돌아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