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놓친 어르신
세상이 가끔 너무 빨리 달린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속력을 다하여 따라잡으려 하지만 시간의 특성상 기다려주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버려서 쓸모없는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직업들에서 그런 걸 쉽게 찾아볼 수가 있는데 타자를 대신 쳐주시던 타자원이라던가 활자를 문서로 인쇄하던 식자공들은 기술에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어제 우연히 인사하게 된 어르신도 그러한 직업을 가지고 계시던 분 중 한 분이었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뭐 하고 계세요?”
밤에 산책을 하다가 가끔 마주치는 이 어르신도 건강을 위해 걸으십니다. 어두운 밤에 가로등 빛 하나 의지해서 벤치에 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계시길래 집에 들어가지 않고 건너편 자리에서 말을 붙였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칼로 나무로 슥슥 깎으면서 사람 모양의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너무나 이쁘게 잘 만들고 계셔서 어르신과 대화를 하였고 과거에 조선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배를 만들던 때가 있었어.”
1950년대 중후반부터 일하시던 어르신은 나무배를 만드시는 목수로 처음 원산 조선소에서 일을 하셨고 조선공으로 자연스레 기술을 이어받아 칠성 조선소가 문을 닫은 2017년까지 배 만드는 일을 하셨습니다. 60년 정도 같은 곳에서 일을 하시다가 마음이 너무 아프셔서 지금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예전 외가가 있던 이곳으로 이사를 오셔서 산책하시거나 이렇게 나무로 무엇인가 만드는 일로 하루를 보내신다고 합니다.
어르신이 한창 일을 하시던 때는, 동해에 명태잡이와 오징어잡이 배들이 많아서 자신이 만드는 배를 가지고 출항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고 합니다. 가공이 어려웠던 목재에서 강화 플라스틱으로 배가 만드는 방법이 바뀌었지만 나무만큼이나 배 만드는 일을 사랑하셨기에 어렵지 않게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속초를 가보고 싶지만 못 가겠어.”
칠성 조선소는 그 기능을 다 하고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전 것들과 공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였는데 이곳이 조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쓸모를 다한 것은 틀린 것이고 새롭고 세련된 것이 들어오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방 날리는 이곳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상점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예전 나무배를 만들던 시절부터 있었던 기계들과 도구들을 전면에 내세워 전시관으로 꾸미면서 낯섦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쉬어 갈 수 있게 카페가 들어섰고 칠성 조선소라는 간판은 그대로 놔두면서 바다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P : 세상과 나의 조우는 실패해야만 한다. 너무 빨리 가 세상의 시간이고 너무 늦게 가 나의 시간이다. 그 시차가 서정일 것이다. (조선소에 있던 어떤 책.)
어르신에게 작년에 다녀왔던 조선소 사진을 보여드렸습니다. 핸드폰 불빛 때문인지 가로등 빛 때문인지 아니면 오래간만에 환히 비춘 달빛 때문인지 어르신의 눈도 반짝거렸습니다. 예전에 자신이 쓰셨던 기계들과 도구들을 보면서 이렇게라도 남겨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시간의 물살이 너무 늦게 달리던 어르신의 삶을 휩쓸어 간 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칠성 조선소는 그 시대를 기억하고 우리들에게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시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는 듯 남아있습니다. 마음을 이끄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모던함이나 예술 또는 상업적 가치가 아니라 우리들이 잃어버린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르신의 이야기에 작년에 갔었던 칠성 조선소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어설프고 서툰 저의 시간들이 환대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위로받는 듯하였습니다. 세상이 너무 빠른 것이지 나의 시간은 잘못된 게 아니라고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게 안기는 시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 것들이 따스한 말로 시대를 넘어오는 이런 칠성 조선소가 계속 남아주어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