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EP 01

다락방의 카뮈

by 무무

키가 크지 않았던 그때에도 기어서 겨우 들어가야 하는 우리 집 다락방이 왜 그리 좋았을까요? 들락거리기가 쉽지 않아서 먼지가 자욱하고 꿉꿉함이 느껴지던 그곳이 참 따스했습니다. 길게 늘어뜨려진 줄로 된 손잡이를 댕기면 필라멘트 소리가 나면서 마치 세상을 환히 밝히 듯 어두웠던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던 그 순간이 참으로 소중했습니다. 내 방이 없던 시절, 유일하게 내가 쉴 수 있던 이 공간에서 책장 진열에 실패한 수북이 쌓인 책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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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처음 알게 된 건 여기였어요. 한자와 같이 쓰인 책들을 제외하고 선택지가 많이 없던 와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까뮤”라고 적힌 당신 이름이었습니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잘 모르던 시절이기에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불린 당신 이름이 그저 멋지게 다가와 쪼그려 앉아 있던 제 무릎 위로 올리게 되었어요, 눅눅한 책 냄새를 풍기며 책을 펼치게 되었고 당신이 인도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완벽한 고독, 새벽 1시의 큰 역의 화장실.



지금도 노트나 다이어리를 사면 첫 번째로 적는 문장이에요.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어요. 보자마자 공책을 펼쳐서 이 문장을 적고 짧디 짧은 문장을 만들어보겠다고 의기양양하게 펜을 잡기도 했어요. 물론 당신의 저 문장 말고는 아무것도 적을 수는 없었지만...


당신의 아름다운 저 문장에 많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요. 외로웠을 어느 한 남자의 무심코 떠나려는 여행, 혼자 아들을 키우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들린 역에서 화장실로 걸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떠나보내고 화장실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등... 한 문장에서 많은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우면서도 좋으면서도 부러웠어요.

그리고 운이 좋게도 프랑스에서 몇 년의 시간을 머물 기회가 있었어요.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고 했을 때,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걱정보다는 당신이 있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벅차오르기만 했어요. 쉬는 날마다 당신의 뒤를 미술관 가듯이 발자취를 무작정 따라갔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내가 무엇인가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찾아간 당신의 어린 시절 바닷가를 알게 되었고 차를 빌려서 찾아갔었어요. 자르댕 데세 공원을 지나 양의 길이라고 불리는 도로를 따라 당신의 시작점인 바다에 앉아 당신의 책을 반복해서 읽어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제 옆에는 완성하지 못한 당신의 마지막 유작이 놓여 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되풀이해서 읽어요. 그리고 당신의 다른 작품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라 책장을 들락날락 거리며 꺼내서 다시 보게 되네요. 책 읽는 기쁨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만들어줘서 고마웠어요. 언젠가 제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오게 된다면, 다음 목표는 내 노트에 항상 적힌 당신의 아름다운 문장 같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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