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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12. 2023

작가수첩 2

by 알베르 카뮈

일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워서 그래도 하루에 한쪽씩이라도 읽어야 잠을 청할 수가 있는 저는 책이 잘 읽히지 않을 때마다 펼치는 책이 있습니다. 몇 권이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저는 주로 카뮈의 노트들을 그냥 펼칩니다. 3권의 그의 노트는 카뮈만을 모아둔 셀렉션에 꽂지 않고 책상에서 항상 꺼내볼 수 있게 손 닿는 가까운 곳에 진열했습니다. 활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조금씩 꺼내서 읽습니다. 어떤 날은 아무 곳이나 펼쳐 한두 줄의 문장을 읽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의 매력에 빠져 한 권을 다 읽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 카뮈는 저에게 하나의 습관을 선물을 해줬는데 그것은 바로 메모입니다.



P : 완벽한 고독. 새벽 1시의 큰 역의 화장실.



아무것도 아닌 이 문장에서 저는 메모라는 습관을 시작했습니다. 카뮈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던 객기가 넘치던 시절,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마음에 노트와 연필을 사게 했습니다. 저 간단해 보이는 문장이 가지는 힘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며 노트를 샀지만 결국 저는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꺼내놓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등학교 내내 카뮈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내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확신할 수는 없지만 카뮈를 읽다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한 권 한 권 찾아서 읽었습니다.


늘 메모를 하고 다녔던 카뮈는 세상을 떠난 뒤 발견된 그의 수첩이 총 7권이 있었습니다. 수첩으로만 알려져 있는 것은 그러했지만 사실 아무 종이나 냅킨 등등 메모한 것을 모으면 책 4-5권은 나올 분량이었고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든 날것의 글들을 봤을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 볼 수 있는 카뮈의 습작이나 메모들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번역한 책 3권이 전부입니다. 카뮈 재단에서 내년에 좀 더 메모한 것을 정리해서 한두 권 정도 습작 노트를 공개한다고 하니 기다리게 됩니다. 그의 노트에는 앞으로 써야 할 소설의 주제나 소재와 같은 필기도 보이고 그를 사랑하는 독자라도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카뮈만의 필기도 상당 부분 담겨있습니다. 1942년 1월부터 1951년 3월까지의 기록이 실려 있는 이 수첩에는 카뮈에게 있어 가장 영광의 시기였지만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와 함께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했던 시기였고 카뮈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이 책은 다른 노트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입니다.

이 책은 약간 파스칼의 <팡세>와 닮았습니다. 부러우면서도 즐거운 카뮈의 이 책은 생각나면 그걸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적고 또 적었는데 길고 짧음이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의 문장이 음악이 되고 철학이 나오고 그걸 정리하면 소설이 나오는 거 같아서 책상서랍에 비밀일기 같은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P : 반항. 자유란 바로 거짓말하지 않을 권리다. 사회적인 면(작건 크건)에서 그리고 윤리적인 면에서 진실한.


P : 프루스트의 감정과는 정반대 되는 감정 : 새로운 도시, 새로운 아파트, 새로운 존재를 만날 때마다, 장미꽃이나 불꽃을 새로이 만날 때마다, 장차 길이 들 것을 생각하면서 그 새로움에 황홀해하는 것 - 그런 것들이 장차 맛보게 해 줄 '친밀감'을 미래 속으로 찾으면서, 아직 오지 않는 시간을 탐구하는 것.



한 번은 프루스트의 관한 이 문장을 보고 카뮈의 반대되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재밌었고 그저 어딘가에 꽂혀 있을 노트에 지나가버린 글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은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습니다.


카뮈는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꾸준하게 반성을 하며 스스로 행동지침을 정하면서도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해 왔습니다. 특히 1942년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적 사건과 카뮈 개인으로는 지병인 결핵이 재발하는 어려운 시기였는데 그는 좌절하지 않고 그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반항을 신화적 차원에서 형상화한 하나의 연대기를 구상하는데 그것이 <페스트>였습니다.



P : 만약 이 세계에 어떤 의미가 있어 보인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려고 한 작가의 고민과 위대한 작품의 날것의 습작을 우리는 이 노트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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