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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21. 2023

윤미네 집

by 전몽각

졸업을 한 학기 남길 때 즈음, 취업이 결정이 되었습니다. 외국에 나가 있는 저는 어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예상치 못한 택배 하나를 받게 되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어머니의 손편지와 함께 앨범 4권이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의 사진이 들어있는 이 사진첩을 저에게 보내신 이유가 궁금해 물었습니다. 대견하다는 말과 함께 외국에 나가서 가족들이랑 떨어져 있는데 남는 것은 이거뿐이라며 한국이 그리울 때 펼쳐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어머니는 종교와 같았기 때문에 지금 저보다 어린 어머니를 바라보며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셨으면 좋았을 외할머니의 모습과 지금과는 너무 다르게 이쁘게 생긴 형과 누나, 잘 기억이 나지 않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는 죽마고우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 중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에 점점 귀를 기울이게 된 것도 아마 이때부터였던 거 같습니다.


이 책은 아이의 모습을 흘러가는 순간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의 사진으로 일대기를 담아냈습니다. 사진 광이라 불리던 전몽각 선생님이 딸 윤미의 성장부터 결혼까지의 기록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 이 책은 딸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담긴 아버지의 시선을 담았습니다. 토목공학과 교수님이던 선생님은 전문가는 아니셨습니다. 아마추어 사진집이지만 그 어떤 사진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환이 깃들어 있습니다. 무엇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담기 위해 선생님은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 그 모습이 예뻐서 카메라를 드셨고 아이인 윤미의 모습을 담고, 한 발을 떼는 순간을 담고 입이 트이는 모습을 또 담으며 아이의 어린 날을 글이 아닌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저에게도 선생님의 기분을 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변화를 넘어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무럭무럭 자랄 즈음부터는 아쉬움이 묻어있습니다.



P :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토록 천진했던 분위기도 차츰차츰 사라지고 현실적으로 변해 사진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필름 소비량도 자연 줄어갔다.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 카메라를 의식하는 아이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선생님은 아이의 의식에 빗겨 카메라를 들기 시작합니다. 딸 윤미가 커서 연애를 할 무렵 그 모습을 담기 위해 몇 미터 뒤 떨어진 곳에서 담은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딸의 행복한 한 때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의식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행복한 순간만 기록해 그 자리를 떠나는 아버지의 마음은 참으로 크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딸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다고 할 수 있으나 그만큼 딸의 행복을 함께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대신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딸을 떠내 보내야 하는 시집가는 순간까지 보고 나니 윤미가 아버지 품을 떠났구나 하는 아련한 여운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P :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잊혀지게 하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 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 순간을 감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되돌아가지 못해 더 아름답게 추억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사진 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지금 보시는 판본은 90년대에 절판된 후 약 20년 만에 다시 발간된 것입니다. 초판본에는 없는 딸 윤미의 모습은 물론 여기에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을 더 담았습니다. 윤미의 성장과 동시에 윤미의 엄마이자 자신의 아내 모습은 윤미와 대비되어 세월의 흐름을 증명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났던 여성은 어머니가 되면서 그 빛을 아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자랄수록 자신의 빛으로 아이를 더 밝혀주려고 노력했기에 주름이 늘어갔습니다. 하지만 전몽각 선생은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를 담음과 동시에 한 시대 여성의 모습을 담아내신 듯합니다.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을 기록한 린다 매카트니처럼 전몽각 선생도 일상의 나날을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생각해니 특별하고 의미 있는 순간은 거창한 날이 아닌 보통의 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꾸밈없고 의식이 없는 자연스러움에 시간과 세월이 묻히고 나면 소중하고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하루로 기록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하루가 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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