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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12. 2023

하늘과 땅

by 산도르 마라이

제 인생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았던 곳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였습니다. 발길이 닿는 곳곳이 아름다웠던 도시에서 오래된 골동품을 파는 곳에 발걸음을 옮겼을 때 제 눈에는 초록색의 포장마차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멈추었던 이유는 그곳에는 떡볶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책들이 즐비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레처럼 생긴 이 책 서점에서 영어를 조금 하시는 주인장님을 만날 수 있었고 헝가리가 처음인 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작가를 소개해주며 책 한 권을 보여줬습니다. 책 제목은 <gyertyák csonkig égnek>였고 읽을 줄도 모르지만 이 또한 추억이기에 책을 그렇게 사서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그 책이 <열정>이라는 제목의 번역된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고 산도르 마라이라는 작가를 그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몇 번이고 그 책을 되풀이했는지 모를 정도로 가끔 헝가리나 수레가 그리울 때면 여전히 가끔씩 아무 페이지나 넘기게 되는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산문집입니다. 그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끌려가는 기분이 드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끝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언제나 끝을 이야기하고 목적으로 말합니다. 그의 글에는 그에게 가는 길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통하지 않고 절대 깨질 거 같지 않은 단호함이 보이는데 그건 마치 독실한 신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와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산도르 마라이는 제게 핑계를 대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전부를 바치라고 말을 합니다. 그에 따르는 결과를 보지 말고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그저 그것이 임무이고 순리라고 말합니다. 삶은 원래 그 끝까지 하는 것을 전제로 시작된 것이기에 역설적이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전부를 바치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면 전부를 바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너무 단호해서 어머니가 해야 할 일들을 명령하고는 언제까지 돌아오겠다고 말하고는 사라지는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그의 말에는 그래도 사랑이 묻어나는 진심 어린 충고의 말처럼 들려서 그런지 몰라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그것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P : 온 힘을 다해 마음껏 글을 써라. 그들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들의 취향과 유행, 명령에 개의치 말라. 서로 싸우고 당신을 규정짓는 일은 그들에게 맡겨라. 당신은 다만 온 힘을 다해 글을 쓰는데 전부를 바쳐라. 그 밖의 일에는 절대로 눈길을 돌리지 말라. 문장이 완전하고 솔직하고 조화로우며, 풍부하면서 냉혹하고, 절도 있으면서 진실하기 위해서 필요한 반 시간이나 반나절을 주저하지 말고 선사하라. 성숙의 기간이 지나가고 더 이상 피할 수 없어서 어느 날 글을 쓰게 되기까지 필요한 십 년, 아니 이십 년을 아까워하지 말라. 당신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 당신이 글을 쓰는 일에 건강과 행복 전부를 바치지 않는다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신이 할 일을 하지 않고 맡은 임무를 완수하지 않는다면 행복하거나 병이 드는 게 일 년 아니 백 년 후에 무슨 대수이겠는가? 전부를 바쳐라. 명심하라! 온 힘을 다해, 조건 없이, 마음껏 주어라. 전부를 바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 임무이니 오직 그렇게 하는 길만이 순리일 것이다.



열심히는 살았던 거 같지만 무엇인가에 깊게 몰입해서 달려들었던 적은 없던 거 같습니다.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인지하고 있어서 묵묵히 꾸준히 해왔던 거 같습니다. 조금은 돈과 상관없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처럼 살아왔는데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은 어느 날 이 책을 참고를 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면 그저 열심히 쓰라고 했던 그의 말을 떠올리며 매일같이 새벽에 조금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책이었습니다. 무엇인가 각성이 필요하고 회초리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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