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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술사 Apr 20. 2018

[오사카 카페]  몰랐어. 보약만 달이는 줄 알았어.

오사카 히라오카 커피(平岡珈琲店, Hiraoka Coffee)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탈레랑 / 프랑스 정치인

요즘 길거리에는 직접 로스팅을 한다는 로스터리 카페가 참 많습니다. 직접 로스팅을 한다는 건 신선하고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라 좋기도 하지만. 그중에는 로스팅을 잘 하지 못하는 곳도 많아요.  비싼 로스터기로 어떻게 이런 로스팅을 하냐고 묻고 싶은 카페도 많구요.


상용 로스터기는 비쌉니다. 유명 브랜드의 경우 국산 중형차 가격에 육박하며 중소기업 제품의 경우도 오백만 원 내외죠. (그런 가격이 부담되어 멸치 통 등을 개조하여 조그만 로스터기를 직접 만든 개인들도 많아요.)


그렇다면 로스팅을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로스팅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 한 가지는 '강배전 로스팅을 잘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생각해요.


스페셜티 커피의 영향으로 약하게 볶는 라이트 로스팅이 로스팅의 모든 것처럼 치부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약하게 볶는 라이트 로스팅(약배전)이든 강하게 볶는 다크 로스팅(강배전)이든 여러 로스팅 테크닉 중 일부 방법일 뿐이에요.


라이트 로스팅이 모든 로스팅의 '좋음'이 될 수 없고 다크 로스팅이 모든 것의 '나쁨'이 될 수 없어요. 콩의 특성상 향이 좋고 산미가 좋은 스페셜티 커피에는 약하게 볶아서 그 콩이 가지고 있는 향과 산미를 살리려는 로스팅을 하기 위해 약하게 볶을 뿐이죠.


그러나 강하게 볶은 커피에서 오는 매력은 약배전 로스팅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깊고 풍부한 바디감과 실크처럼 부드럽게 미끌 거리는 입안의 감촉과 기분 좋은 쓴맛을 선사해요. 문제는 그런 좋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 로스터리 카페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강배전을 잘 하지 못하니,지나치게 쓴 맛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목 넘김은 거칠 수밖에 없죠. 이런 부정적인 경험들이 쌓이니 소비자들은 점점 강배전 커피를 외면하고 쓴맛이 너무 강하니  강배전은 태운 커피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태운 커피와 강배전 커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에요. (심지어 로스팅을 할 때 커피를 태우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답니다.)


이번에 소개할 카페는 강배전 커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오사카의 히라오카 커피입니다. 이곳은  1921년 개업을 하여 이제 곧 100년을 앞두고 있다. 3대 사장님이 근무를 하고 있으며 간사이 지방에서 제일 오래된 카페라고 합니다.

히라오카 카페의 외관은 맛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돔 모양의 어닝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하죠.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커피가 만들어져 있는 완성형 커피인의 자존감이 느껴지죠.

들어가면 바에 오랜 시간 커피를 다루어 왔다는 느낌이 드는 마스터, 사장님이 계십니다.

저렇게 직접 Bar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될 만큼 카페에 사장님의 존재가 녹아 있습니다.

이 집을 찾아온 이유는 바로 이 강배전 때문이에요.

이제는 이렇게 기름이 흘러내리는 원두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카페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강배전으로 기름이 흐르는걸 창피해하거나 감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강배전의 장점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면 그게 부끄러운 일이죠.


이 카페는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 정말 독특합니다. 사장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과 커피가루를 함께 끓이는 터키식 커피인데요,터키식 커피 추출 방법 사용 시 단점인 커피 찌꺼기의 문제를 보자기 같이 생긴 천으로 걸러내어 준다는 점이 다릅니다.

 순서를 보면 우선 커피를 개량하여 그라인딩을 하고 냄비에 끓여요.

 끓인 커피는 보자기에 부어 커피 찌꺼기를 걸러냅니다.

 마지막으로 보를 꾹꾹 눌러서 남아있는 커피를 짜내요.

흡사 약탕기에 약을 달이는 과정과 비슷하며, 흔히 말하는 융드립과는 거리가 멀어요. 이렇게 내려진 커피의 맛은 어떤 맛일까요?

커피의 맛은 우선 입안 가득 부드럽고 깊은 단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굉장히 부드럽죠. 흔히 말하는 silky 한 질감을 느낄 수 있어요. 목 넘김은 굉장히 부드럽고 바디는 입안 가득 다크 초콜릿 우유를 머금은 듯 달고 무거워요. 커피를 마신 뒤 입안의 달큰한 여운이 유성처럼 긴 꼬리를 남기며 혀부터 목청까지 긴 포물선을 그리며 지나갑니다.


이 카페는 도넛을 파는 가게로도 유명합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평범한 도넛과 진한 커피는 기름의 느끼함을 강배전 커피의 쓴맛으로 잘 다스려서 커피와 도넛을 함께 먹을 때  맛이 정말 조화로와요.


아마도 강배전이 아닌, 약배전 커피와 도넛과의 궁합이었다면 도넛의 뒷맛이 이처럼 깔끔하지는 못했을 거에요.  도넛 역시 최대한 기름지지 않게 튀겨내려 노력한 느낌이 들어요.


커피 주문 시 같이 나오는 저 작은 주전자 안에는 하얀 액체가 담겨 있는데 우유 같기도 하고 요구르트 같기도 합니다. 도저히 그 정체를 몰라 물어보니 생크림이라고 해요.  생크림이 너무 부드러워 우유처럼 느껴진 것이었죠. 이 생크림은 커피를 충분히 음미하고 두세 모금 남았을 때 잔에 따라 마시면 감미롭고 부드러운 비엔나커피가 되요. 약배전 된 커피와 크림의 조합은 굉장히 느끼한 산미를 보여주는데 반해 강배전 된 커피와 크림의 궁합은 상상 그 이상의 맛을 보여줍니다.

이곳은 커피의 추출부터 생크림까지 각각의 궁합과 조화로움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와인에서는 음식과 와인의 조화로움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커피에서도 커피와 디저트의 조화로움에 신경을 쓰는 추세이다. 이곳은 그에 더해 로스팅의 정도와 추출 방법, 그리고 부재료까지 감안한 마리아쥬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커피에 대한 이해가 놀랍도록 정확한 곳이에요.

이 곳의 대표 메뉴인 블렌드와 도너츠를 묶은 세트가 600엔이에요. 금전의 여유가 있다면 가장 강한 배전을 뜻하는 프렌치 로스트 콜롬비아 슈프리모 커피를 마셔보세요. 진정한 강배전의 감칠맛과 깊은 단맛,쌉쌀한 뒷맛과 실키한 바디감이 입안 가득 헤엄쳐 다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에요. 한국에서 프렌치 로스트된 커피를 마셔 볼수 있는곳은 한손으로 셀 만큼 그 수가 적거든요.

마시기 전 기름지고 까만 단팥죽과 같은 질감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올거에요. 저 질감은 이곳이 아니면 절대 볼수 없을 거에요. 마시지 않아도 입안 가득 무거운 바디감이 느껴질 것 같죠? 실제로는 더 무거워요. 도너츠세트도 좋지만 조금 더 돈을 써 배전도 중 가장 강한 단계의 배전도를 일컫는 프렌치 로스팅 된 콜롬비아 슈프리모를 꼭 드셔 보세요. 꼭! 꼭! 드셔보세요.

더구나 이곳은 놀랍게도 갤러리 카페를 표방해요.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아요. 열 평을 조금 넘긴듯한 작은 카페 안에 그림을 전시할 생각을 했다는 건, 어지간히 그림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주인장의 열정이 느껴져요.

카페 안은 오랜 역사만큼 일본 현지인들의 단골 카페 느낌이 들어요. 한국에서 온 커피 쟁이가 커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니 동네 단골손님들이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주인장은 영어에 능숙하며 커피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 주세요. 저는 왠지 그들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지나가는 범한듯한 스스로의 자책이 들더라구요. 정말 소중한 공간은 자기만 알고 싶은거잖아요.


문을 열고 나오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어요. 오래된 시간 속 여행을 마치고 나오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주소:3 Chome-6-11 Kawaramachi, Chuo, Osaka, Osaka Prefecture 541-0048 일본

영업시간: 목~월  오전 9:00~오후 6:00, 화요일은 휴무, 수요일은 12시에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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