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편지

<바나나, 냉장인가 하는 그런 걱정>. 10화

by 유우진

안녕.


다시금 이 글을 꺼내 읽어보게 될 줄은 몰랐어.

너는 글을 쓰면서 매번 끝맺음을 낸 적이 많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이 글을 결국은 끝을 내었지.

어쩌면 그냥 결론이 난 상태여서 일지도 몰라.




그 어둠을 지나는 동안, 남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이 글은 혼자 그냥 몇 밤 안에 후루룩 다 써버리던데,

그런데 네가 말했 듯 꼭꼭 씹어서 써버린 탓에 다시 꺼내보지도 않았다고 했지. 활활 다 태워서 아무것도 안 남았던가, 징글징글하게도 다 쏟아부어서 굳이 열 의욕도 없다던가.

이것을 네 대신 슬쩍 밖으로 내보내 본 것은, 어쩌면 이 이야기를 그냥 객관적으로 보내보면 또 어떨까 싶어서였어.





여전히 넌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어하고,

가끔은 또 그때로 돌아가기도 해.

그런데 이걸 그냥 하나의 책으로 보니, 어쩌면, 아 지금은 이 챕터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인생을 드라마처럼 보라고.


지금은 시즌 1의 중간에서, 주인공이 잠깐 고난에 빠지는 내용이고

시즌 3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니 그렇게 바라보라고.





알아, 여전히 가끔은 버겁다는 거.





어쩌면 그때보다도 더 넌 가끔 더 힘들어하고, 예전보다도 더 심하게 숨을 못 쉬기도 해.

여전히 가슴을 쓸어내리고, 쿵쾅거리는 심장에 어쩔 줄을 몰라 심호흡을 하고.

픽하고 쓰러질 것 같아,

울기 직전의 딱 그 저릿함이 있어 가슴께에 손을 얹고 어후. 이거 어떻게 하지 하는데, 눈물은 안 나오지.

분명 이전의 어둠으로 배운 것이 있으니 점점 더 나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지.

감기처럼 말이야. 그렇게 한 번씩, 떨어지지 않을 때가.




그렇지만 살아줘서 고마워.





알잖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오직 나였어.

아직도 많이 어설프고, 부족하고, 늦은 것 같지만.





있잖아, 5년이나 지나고 보니, 세상엔 귀여운 것도 많고, 네가 좋아하는

소복소복한 느낌의 하루하루가 있더라.

그리고 말이야, 생각보다 세상은 넓어서 정말로 나는 우주 속의 먼지였어.






네가 종종 힘들어하던 게 그거였잖아. ‘어떻게 보일까’.

그런데 말이야, 세상은 가끔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나를 신경 쓰기엔 뭐가 너무 많더라고.

그래서 그냥, 너만, 너의 책에서, 너의 영화에서 그 챕터의 주인공이라고. 네가 그렇게 너랑 연애하고 사랑하면

그게, 그래, 그렇게 되더라니까?





당장 바다를 보러 떠나지 않아도 괜찮아.

꼭 산을 보러 가지 않아도 좋고.

그렇지만 한 걸음을 떼면, 그게 그냥 집 앞 놀이터든, 어디든. 내 작은 발걸음이 나한텐 너무 큰데,

어쩌면 남들이 보기엔 그냥




아, 바다 보러 온 사람

카페에 있는 사람.

버스의 행인

오늘 왔다간 손님

대학교의 학생 중 하나

그때 숙소에 있던 혼자 여행 온 애

이렇게 그냥, 그렇게 지나가게 될 수도 있겠더라고.



그러니 조금만, 조그만 무서워해도 괜찮을지도 몰라.

너만, 너의 주인공이 되어줘.

우선은, 그냥 그렇게만 하자.




정말이지, 그래, 그러게 그게 됐어.

무슨 말인지, 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