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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Jul 26. 2023

낭만닥터 김사부

‘낭만닥터 김사부 3’이 얼마전 끝났다. 남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드라마인 터라 시즌 1부터 어찌나 열심히 챙겨보는지 나도 덩달아 오가며 몇 회를 보기도 했다. “낭만닥터 원, 투, 쓰리가 한석규의 인생 대표작인 것 같아, 언제 바뀐 거야?.” 나는 농담삼아 이렇게 말해주기도 했다. 초록물고기와 넘버쓰리, 8월의 크리스마스와 접속의 한석규 필모가 이렇게 바뀌는 건가.



낭만닥터 김사부는 내 생각에 동화에나 나올법한 인물이지만 확실히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한 의사의 헌신과 생명을 구하는 열심이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결국은 자신의 대의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김사부 주변에 모여든다는 전형적이지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결론으로 이 드라마는 끝을 맺었다. 시청률도 나쁘지 않았다고 하니 성공적인 드라마인 것은 틀림없다.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 장르는 남편과 겹치는 부분이 작아서 동시에 드라마에 열광하며 보는 일은 드물다. 남편은 김사부를 좋아하는 취향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하지만, 감동 포인트가 있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나는 취향이 분명하지 않고 그때마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달라진다. 대체로 남편이 지루하게 생각하는 드라마 혹은 영화를 본다.



너무 길어 여기에 쓸 수 없는 이야기지만 작년부터 올해 초에 경험한 한 사건으로 해서 나는 중요한 몇 가지를 깨달았다. 인간은 다면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단순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은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진부한 것 같으면서도 감동의 포인트가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 ‘짠!’하고 나타나 자신들의 지루한 일상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만한 영웅 같은 인물의 출현을 고대하는 것 같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같은 숨겨진 영웅의 스토리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을 봐도 그렇다. 세상을 구할만한 영웅이 그렇게 탄생하는 것도 아니며, 어쩌면 거대한 이권의 카르텔 속에서 얽히고 설켜 있는 세상이라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지배적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복잡한 세상사에 집중하기보다는, 다가가기 쉬운 감동적인 영웅 이야기에 혹하게 된다.



사람들은 또 어떤 사안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그 사안의 파장이 어디까지일까를 고민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은 미래를 동경하면서도 미래가 보여주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에는 미숙하다.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지만,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에 생각보다 익숙하지 않다. 생각보다 귀찮고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일부 선구안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 귀찮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떠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인생은 고달프지만, 그로 인해 세상은 발전한다.



나는 가끔 스토리의 방향이 정해져 있는 통속적인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은 것을 보면서 드라마 피디가 무엇을 고민할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드라마피디는 인간의 본래적 고민에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원초적 감정을 건드리는 깊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지만, 시청자의 말초신경이 움직이는 것에 집중해야 시청률은 더 잘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예술성과 대중성 둘 다를 사로잡을 만한 뛰어난 드라마 피디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사람들 대부분은 시류에 몸을 맡기고 인생을 살아가므로 복잡하거나 심오한 스토리를 굳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시도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낭만 닥터처럼 메시지가 확실한 드라마는 대중에게 환영받기 쉬우나, 조금 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드라마들은 매니아층을 양성할 수는 있어도 대중적이지는 못하다.



사회가 복잡해져 갈수록 인간은 ‘가벼운 터치’를 즐기는 것 같다. 단순하지만 감동 포인트가 있는 영화나 드라마, 쏟아져 나오는 감성 에세이, 도처에 널린 감성 카페와 맛집은 ‘가벼운 터치’를 즐기는 현대인들의 기호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감독이나 소설을 쓰는 작가는 자기 작품을 어느 지향점에 두고 작업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뭐 기호는 시절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니, 지금 나의 지향점이 대중적이지 않다고 해서 조급하거나 낙심할 것도 아니다. 자신의 ‘스똬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중이 쳐다볼 때가 반드시 있다.



나는 ‘낭만닥터 김사부‘인 한석규가 싫지는 않지만, ‘초록물고기’의 ‘막동이‘ 한석규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이었던 한석규를 더 그리워한다. (2023.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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