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pcicle Jul 26. 2023

자세가 예쁘지 않아도

몸에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통해 배워야 하는 운동이나 음악, 공부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자세가 중요하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이 아니고 규칙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매일 예습과 복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자세도 중요하다. 몸을 많이 사용하는 운동은 자세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면, 수영은 처음부터 자세를 정확하게 배워야 실력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수영하는 모습도 아름답기 때문에 강사는 항상 바른 자세로 수영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악기를 한가지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역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지루할 만큼 똑같은 자세로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어느 날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다.



J***에서 방송하는 ‘우리 동네 마스터스’라는 골프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동안 가져온 생각에 물음표가 달렸다. 오랫동안 골프를 쳐온 일반인들이 편을 나누어 게임처럼 하는 경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보통은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출연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골프를 치는 자세가 천차만별로 이상하다는 것이다. ‘폼생폼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닐 것인데, 출연자들의 자세는 하나같이 정확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세는 더 이상하다. 보는 사람에게 ‘도대체 어디서 저런 이상한 자세를 배웠을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골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자신의 공을 구멍에 가장 가깝게 가져다 놓는가이다. 적은 횟수로 구멍 속으로 공을 먼저 집어넣은 사람의 골프 실력이 가장 좋다. 중년의 출연자들은 공이 방향이 맞게 날아갈 것 같지도 않은 이상한 자세로 골프채를 휘둘렀지만, 그들은 놀랍게도 비교적 정확한 방향으로 자신이 원하는 지점까지 공을 날렸다. 상대 팀은 전문적으로 레슨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정확한 자세를 가진 골퍼들이었지만 이상한 자세로 공을 날리는 중년팀을 이기지 못했다. ‘자세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어도 실력이 좋을 수 있구나...’



그들은 자세를 교정하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골프를 좋아하고 즐기다 보니 시간이 만들어 준 구력으로 골프공을 자신이 원하는 지점으로 날릴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하고 예쁘지 않지만, 공을 치기에 가장 편한 자신만의 자세를 만들어서 골프를 즐기게 된 것으로 추측해 본다. 그들이 프로선수도 아니고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우리 동네에서는 그중 골프를 잘하는 사람들인데 자세가 박세리 같지 않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정석대로 배우는 것이 실력을 늘리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지점까지 수준을 올리는 과정에서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는 몰라도 나만의 방법으로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수영을 배우다 만난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서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지 못했다. 얼굴이 물속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무섭고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머리를 물에 집어넣어야 수영에 속도가 나고 자세도 예뻐진다고 수영강사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할머니는 그냥 머리를 물밖에 내민 채로 수영을 배웠다. 자유형을 하면서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지 않으니, 몸이 자꾸 가라앉아서 진도가 나가질 못했다. 물론 평영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머리를 내놓고 다른 동작을 배웠다. 강습받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수영강사로부터 폭풍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유형은 끝내 극복하지 못했지만, 배영과 평영은 그래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무척 기뻐하던 할머니 얼굴이 생각난다. 자유 수영 시간에 만난 할머니는 배영으로 레인을 한 번 왔다 갔다 하고 난 후, 머리를 내민 채로 팔과 다리를 움직여서 할머니만의 평영으로 천천히 수영을 하였다. 즐거우면 됐지, 뭐 어떤가 싶었다. 방송에서 보았던 중년 골퍼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낭만닥터 김사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