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이후로는 집에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마당에서 개를 키웠고, 집안에서 키웠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고양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서 같이 사는 동물이니 식사때마다 우리 가족이 먹는 밥을 남겨서 그들과 나누었다. 요즘 같으면 개와 고양이를 위한 사료를 따로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마당과 골목에서 우리 형제들은 개와 고양이와 같이 뛰어놀면서 하루를 보냈다.
지금 내가 사는 동네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동네에서만큼은 출산율이 낮아서 조만간 국가존망의 위기를 엿볼만한 분위기는 전혀 없다. 이 동네에서 많이 보이는 또 다른 생명체는 집집마다 키우는 반려견과 반려묘이다. 더러는 아이들 숫자보다 더 많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산책길에서 혼자 걷는 사람은 나뿐인가 싶게 반려견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잠시 멈춰서 강아지를 쳐다보면 그들도 나를 빤히 쳐다본다. 처음 보는 나에게 친밀하게 다가오는 애들도 있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 친한 척을 하는데 이래도 나를 쓰다듬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눈을 보면 나는 마치 사람의 눈을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들이 인간의 언어를 모르니,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해 의사소통하는 것만 불가능하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하다. 요즘 반려견은 내가 어릴 때 키웠던 개들보다 말을 더 잘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 사람과 개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을까’가 궁금해진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저술한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는 개와 여우, 보노보 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동물이 스스로 ‘자기 가축화’를 해서 살아남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예를 들어, 개는 인간이 길들이지 않았으며, 늑대의 종류 중에서 가장 인간에게 친화력을 보이는 부류가 스스로 진화하였다는 것이다. 이 친화력 좋은 늑대의 후예는 개체수가 수천만에 달하고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인간의 반려견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친화력을 보이지 않았던 야생 늑대는 개체수가 끊임없이 감소하고 있어서 멸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적자생존이 아니라, 진화의 최종 승자는 다정한 이들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진화론자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인간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협업과 친화력을 통해 지구상의 생물 중에서 우위를 점하고 살아남아 번성하게 되었다는 이론에 동의한다. 개와 늑대는 원래 같은 종이었지만 친화력이 좋은 부류가 지금까지 인간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을 보자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더 협력적이고 다정한 이들이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사는 동안 적을 만들기보다는 친구를 더 많이 만드는 것에 집중해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인간성의 본질은 애착과 접촉, 공감과 협력이며 이것들은 다정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