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장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구는 부모라면 가지는 인지상정의 마음이다. 나도 아이 돌잔치를 기억하기 위해 캠코더를 이용해 영상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놀이동산에서 놀았던 어느 하루를 기억하기 위해 찍어놓은 영상도 있다.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모든 부모는 아이의 어린 시절이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다. 이 아쉬움이 부모가 아이사진을 찍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나에게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라던 모습을 해마다 찍어놓은 사진이 족히 수백 장은 넘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사진찍기를 즐겨하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귀찮아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도 아이사진은 포기할 수 없어서 그 옛날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디지털카메라를 거쳐 스마트폰까지 중요한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려고 애를 썼다. 인화를 거쳐 앨범에 저장해놓은 사진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진과 영상은 외장하드와 나의 노트북에 잠들어 있다. 사진을 찾아보는 날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디지털 기기의 자료들은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러다 우리 가족의 역사가 담긴 사진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도 간간이 올라온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연도별로 꼭 필요한 사진만 남겨 소소한 가족 앨범을 만드는 것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나와는 달리 요즘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은 온라인으로 아이의 성장 과정을 기록한다. 모든 부모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은 수천 장의 아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 가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면 아이의 일상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는 부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구독과 조회수를 수익 창출의 기반으로 하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영상은 훨씬 많다. 스마트폰이 전 세계에 보급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부모들은 어디서나 내 아이의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고, 그것을 바로 SNS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누구에게나, 아무 때나 보여줄 수 있다니 놀라운 세상이기는 하다.
‘셰어런팅(Sharenting)’이란 공유를 뜻하는 ‘셰어(share)’와 ‘양육(parenting)’의 합성어로 부모가 자녀의 일상 사진과 동영상 등을 SNS에 올리는 행동을 일컫는 용어이다. 셰어런팅은 부모가 자녀의 성장 과정을 손쉽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다른 부모들과 육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내 아이의 일상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과, 내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뿌듯한 마음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다. 또한 게시글에 달린 ‘좋아요’와 긍정적인 댓글을 보면서 ‘내가 육아를 잘하고 있구나’라는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기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성인의 사진이나 영상이 공개되려면 반드시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당연한 원칙을 생각해 보면 더 그렇다. 아이의 사생활이라고 해서 존중받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가 성장하고 난 후 부모에게 ‘왜 내 사진을 허락도 없이 여기저기 올렸냐’고 항의하면 ‘너의 동의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올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온라인에 공유된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이 악의적으로 이용되더라도 이를 통제할 방법이 신통치 않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역시 뭐든지 과하면 탈이 나듯이, 무분별하게 아이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것에 대해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프랑스 의회는 미성년자의 초상권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법안을 논의하였다고 한다. 해당 법안은 ‘셰어런팅 제한법’으로 ‘부모는 자녀의 사생활 보호 의무를 지닌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자녀의 초상권 보호도 부모의 의무 중 하나라는 말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자녀의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고 싶을 때, 부모는 자녀의 나이나 판단력 등을 고려하여 아이를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또한 부모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동의하지 않는 쪽에서 동의를 표할 때까지 자녀 사진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이 이 법안의 주요 골자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에서는 이미 부모가 자녀 동의 없이 사진을 올렸을 때,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데, 이번에 논의되는 ‘셰어런팅 제한법’은 지금보다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캐나다에서는 한 아이가 성장한 후 부모를 상대로 초상권 침해소송을 냈다는 뉴스도 들려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온라인상에서 아이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이슈가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전 세계의 부모가 셰어런팅을 할 수 있도록 대규모의 플랫폼을 만들었던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두 아이의 얼굴을 이모티콘으로 가린 사진을 게시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무분별한 셰어런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유명인이기 때문에 아이 사진을 올리는 것에 최대한 신중하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온라인에 노출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아이의 생각은 배제되고 어른의 즐거움을 위한 욕구 충족에만 빠져있지는 않는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사진을 많이 찍지 않은 이유는 사진이 귀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부터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손쉽게 지울 수 있으며 스스로 만족할만한 사진을 건질 때까지 계속 사진을 찍기 때문에 어느 순간 나는 사진에 흥미를 잃었다. 나의 어렸을 적 사진은 많지 않다. 그래도 백일사진과 돌사진, 몇 장의 가족사진이 흑백으로 남아있으며, 학교에 다니던 무렵부터는 컬러사진으로 찍힌 내 모습을 앨범에서 발견할 수 있다. 눈감고 찍힌 사진도 많고, 못생기게 나온 사진은 더 많다. 세월이 흐르니 누가 보아도 남자아이 같은 나의 백일사진이 소중하다.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사진이라 그런가 보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이 빨리 자라버리는 것이 아깝다고 하셨다. 가끔 오래된 당신의 아이들 사진을 보며 그때를 추억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신다. 사진 속에 같이 찍힌 아버지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젊다. 한 가족의 오래된 기록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채로 살아있다. 아이의 사진이나 영상은 철저히 ‘사적’ 기록이다. 가까운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좋으나 내 아이의 성장 과정을 온 세상 사람들이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