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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Jun 05. 2023

60년대생이 온다

내가 첫 강의를 시작하던 때는 극심한 취업난으로 청춘들이 어디서나 비실비실 말라가던 시기였다. 강의실에서 그나마 반짝거리며 웃는 학생들은 2학년까지였고, 4학년 수업을 하다 보면 수업 시간 내내 얼굴 한 번 들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다. 학생들은 그만큼 우울했고, 우울한 분위기는 나에게도 전염되었다.     


 

학기 말이 되면 성적을 F로 바꿔 달라는 학생의 이메일도 종종 받았다. 이번 연도에 취업이 안 돼서 학교를 졸업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니 전공과목에서 F를 받으면 졸업을 미룰 수 있고, 그 수업은 내년에 다시 들으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학생의 성적표에 F 학점을 날린 선생이 되었다. 또 어떤 학생은 학기 중에 취업이 되었으니, 수업에 못 간다고 하면서도 학점은 잘 받고 싶다고 당당하게 이메일이 온다. 취업에 성공하는 것은 학교에서 통과해야 할 모든 과정에 ‘프리패스’를 받는 것이다. 나는 시험을 보러 오지도 않는 학생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래, 취업했으니 그걸로 된 거지 뭐...’     



2019년에 나는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나에게 20~30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였다.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의 변화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변화에 잘 대처하는 유연성을 갖고 싶기도 했었다. 이 책이 나올때만 해도 젊은이의 10명 중 4명은 공시생족이었다. 세상은 어찌나 빨리 변해가는지 요즈음은 공시생이 현저히 줄어들어 노량진의 컵밥집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공무원연금이 줄어든다니 그마저도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직업이 되었다. 어질어질하다.    


 

얼마 전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860만 은퇴 쓰나미, 60년대생이 온다’라는 제목의 다큐를 방송에 내보냈다. 860만이라니... 말 그대로 쓰나미급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60년대생의 끝자락에 나도 포함된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한 반에 70명씩 한 학년이 16반이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교실이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했다. 오후반이라 아침에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그렇게 좋았다. ‘아! 너무 옛날 사람 같아.’     



작년인 2022년부터 1960년대생들의 국민연금 수급이 개시됐다. 국민연금은 내가 대학생이던 1988년에 시작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30년 정도 국민연금을 낸 60년대생의 노후 준비를 다룬 방송을 보니 문득 나의 노후는 어때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60년대생들은 이제 은퇴하였거나, 곧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일하고 싶어 한다. 연금 수급 개시연령으로만 보면 60년대생들이 부양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맞지만, 아직 생산적인 일에 종사할만한 나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의 일자리는 충분한가? 


    

“나중에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취직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더라. 공부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놀고 싶으면 놀아도 돼!”     


아직 중학생인 손자 손녀를 모아놓고 엄마가 가끔 하시는 말씀이다. 아이들은 신나서 깔깔거리고, 며느리와 딸은 아이들이 할머니가 하는 말에 넘어갈까 싶어 안절부절못한다. 베이비부머가 대거 퇴직하고 나면 취업시장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는 뉴스를 어디선가 본 후로, 엄마는 손자 손녀들의 취업 걱정을 덜었다. 그러나 인구구조의 변화가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고령화로 인한 부양비의 증가는 젊은 세대를 피해 가지 못한다.     



가끔 시간이 날 때, 서울 근교의 식당이나 카페를 가보면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부부들을 많이 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낮시간에 식당이나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여성들뿐이었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같이 다니는 것을 자주 보게 된 지는 불과 2~3년 전부터이다. 베이비부머가 은퇴하는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고 있다. 그들이 언제까지 식당과 카페 순례를 하며 노년기를 보낼 수 있을까? 보수가 작더라도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젊은 세대와 은퇴 세대의 노동시장을 잘 구분하여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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