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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Apr 28. 2023

어쩌다 기러기 가족으로 살기

나는 아들과 조금 특별한 이유로 친하다.


“엄마는 나와 오랫동안 룸메이트로 같이 살았잖아.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친한 거야.”


이 아이는 뭔지 모르게 무심함을 기본으로 장착한 부모와는 다른 감성을 지니고 있다. 하는 말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가족이 같이 갔다가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아이와 나는 미국에 남겨졌다. 누가 가지 말라고 해서 억지로 남은 것도 아닌데 이때를 생각하면 나는 항상 ‘남겨졌다’를 떠올린다. 그래! ‘버려졌다’는 아니잖아? 그럼 된 거지. 남편의 공부가 끝났을 무렵, 우리는 마침내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써버렸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 돌아가도 살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 ‘남겨졌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예정에 없었던 공부를 다시 하게 되고,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남편은 빨리 가서 돈을 벌어야 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일곱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나 혼자 외국에서 사는 일은 내 인생 계획에 없던 옵션이다.



첫 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 전화통에 대고 대성통곡을 하며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돌아와도 된다고 하며 나를 달랬다. 그렇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남편의 권유가 있었더라도, 내가 결정한 일인데 지금 접고 돌아가는 것은 쪽팔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질질 짜는 와중에도 들었다. 기말까지만 참아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 과정만 마치면 짐을 싸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땅을 떠나리라.’ 하고 수없이 다짐했던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땅에 머물렀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서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돼서야 우리는 떠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은 아이와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 엄마가 고단하게 산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미안할 만큼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했다. 피곤한 날은 나도 모르게 일찍 잠이 들어버릴 때도 많았는데, 아이는 나를 깨운 적이 없다. 말해주지 않아도 다음날을 위해 가방을 챙기고 씻은 후, 잠옷으로 갈아입고 얌전히 자는 모습을 아침이면 발견하고 미안했다.



조금 더 자랐을 때, 밤이면 위성TV에서 나오는 한국방송을 보며 놀았었다. 우리는 일박이일의 열혈시청자였다. 내 아이는 심오한 한국말 코미디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강호동과 이수근이, 은지원과 이승기가 노는 것을 보면서 낄낄거렸다. 아들이 나를 룸메이트로 생각하는 것은 그때의 특별한 시간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 항상 이방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우리 부부는 성장환경을 불안하게 만든 것에 대해 아이에게 오랫동안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다 자란 후에 나는 이 일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기억도 어렴풋하다고 한다.



부모는 내 아이를 위해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자란다. 부모가 양육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 낸 결핍 정도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대범함을 가지고 있다.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세심함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그 아이는 절대로 이상해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넷플릭스를 뒤지다 익숙한 영화를 틀었다. 영화의 내용보다는 미국의 고속도로가 나오는 장면에서 생각이 멈췄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저 고속도로와 출구를 알리는 번호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육교처럼 만들어 놓은 다리. 저 많은 다리 중 하나를 지나면 내가 살던 집이 있었지. 너무 익숙한 풍경이고 가끔 가보고 싶은데, 또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라고 무심히 생각했다. 그리운 마음과 싫은 마음이 교차하여 이상한 기분을 만들어 낸다.


“그 맘이 뭔지 알겠어. 오래 살았어도 거기는 엄마가 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어서 그럴 거야.”


별것 아닌 대꾸였는데 묘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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