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생활기록부 작성의 편의를 위해 학생의 기본정보를 적어내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도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부분은 취미와 특기, 장래 희망 같은 것을 적어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이 고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대체 나의 취미는 무엇일까. 특기는 특출나게 잘하는 어떤 것이라는데 내가 잘하는 것은 뭔가, 나는 뭐가 되고 싶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에 대한 정보를 솔직하게 적어내고 싶어도 적을 내용이 부족했다. 옆 친구들은 무엇을 적는지 힐끔거리다 아무거나 대충 적어냈다. 취미는 독서요 특기는 없음, 장래 희망은 신문기자. 뭐 이런 식이다.
어제저녁, 생일주간을 맞아 오랜만에 술상(?)이 차려지고 남편과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나? 취미는 독서랑 음악감상이지. 그렇게 써냈어.”
“책이라고는 잡지도 보지 않는 사람이 뭔 독서?”
어릴 때 취미를 뭐라고 적어냈냐고 물어보니 하는 말이다. 웃기게도 남편은 책을 읽는 사람도 아니며, 음악을 열심히 듣는 사람은 더욱 아니다. 물론 어렸을 때도 책이라면 교과서만 가까이했다고 한다. 그도 나처럼 별로 쓸게 없으니, 독서를 취미라고 써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책을 열심히 읽기는 했으니, 취미가 독서는 맞다.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 없이 밋밋하게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다들 취미로 독서와 음악감상을 적어내던 시절이니 이상한 것은 없다. 음악감상 이야기를 둘이 하고 있자니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어이없어한다.
“아빠는 무슨 음악을 주로 들었어?”
“............”
음악 듣기는 아들의 중요한 취미생활 중 하나이다. 별다른 취미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으니, 여가생활은 당연히 심심했지만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니 심심한지도 몰랐다. 결혼한 첫 해, 아파트 단지 잔디밭에서 우리 둘은 배드민턴을 쳤다. 남편의 제안이었다. 그때는 아파트 경비원이 입구마다 있던 시절이었는데, 우리 아파트 입구 담당 경비원이 남편과 나를 아주 흥미롭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빠 취미는 TV로 스포츠 보는 거지. 하지는 않지만, 보는 것 좋아하잖아.”
‘예리한 넘... 어떻게 알았지?’ TV로 각종 스포츠를 섭렵하는 것은 남편의 중요한 취미다. 사실은 특기도 스포츠가 될 뻔했지만, 취미도 특기도 시간을 투자해야 만들어진다. 일하느라 온 시간을 다 쓰는 직장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어 원래 좋아하고 잘하던 운동인 테니스를 접었다. 뭐가 되었든 본격적으로 취미생활을 하려면, 또 그 취미가 어느 경지에 올라 특기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든 돈이든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의 관심 분야에 대하여 전문적인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칼럼 같기도 하지만 나의 시선이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기도 하다. 이것은 취미로 글쓰기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직업적 커리어의 연장에서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 것인가? 나는 “글쓰기가 취미이자 특기예요.”라고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 지속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