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제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짝’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는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조건이 아니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번역: 김한영), 마지막 장: 결혼할 준비가 되다.)
‘혼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때가 있었다. 혼기를 놓치면 노처녀 노총각이라는 딱지가 붙고 어쩐지 사회의 루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던 시대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다. 나는 사회 분위기가 정해놓은 ‘적당한’ 때에 결혼했다는 것 하나로 지금도 부모님에게 칭찬을 들으며 살고 있다. 결혼을 위한 ‘나이’만 준비되었을 뿐 결혼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하지만 라비와 커스틴도 결혼하던 때, 결혼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나에게 위안이 된다. 왜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은 항상 나중에 오는 것일까?
‘내 인생에 이런 행운이 찾아오기란 쉽지 않아... 드디어 나의 짝을 찾았군!’
이렇게 시작한 나의 결혼은 반짝거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고 세월의 풍상에 깎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믿기 어렵지만 나와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 인생의 방향과 가치관이 똑같았다! 하지만 성별뿐만 아니라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미친 듯이 대립하던 우리는 서로에게 순한 양처럼 온순해졌다. 알랭의 말처럼 서로가 잘 맞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난 지금이 바로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결혼했더라면 사소한 의견 차이로 기분이 상할 일도, 감정이 상해 싸울 일도 없겠지. 나는 결혼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채로 같이 살아보겠다는 무모한 마음을 먹었다. 결혼은 무지한 사람이 벌이는 도박과도 같다. 알랭은 마치 인생을 두 번 사는 사람처럼 친절하게 사랑과 결혼의 경로를 나에게 안내해 주고 있다. 나와 세대가 비슷하니 그도 나와 비슷한 경로를 겪었을 거라고 애써 자위해본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젊은 세대를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서로 맞는지 살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결혼해요?”
최근 만났던 청년이 나에게 했던 질문이다. 결혼을 집안과 집안의 결합으로 보던 시대를 넘어 낭만적인 연애가 시작되었던 시대에도 결혼은 여전히 무지한 사람이 벌이는 도박과도 같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데 익숙하다. 게다가 자신과 취향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협의하는 데도 능숙하다. 그들에게 사회가 정한 결혼의 적령기는 없지만 상대방과 애정에 기반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는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결혼이 줄어들고 비혼이 대세라지만 남녀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친밀해졌다. 지금 ‘제짝’을 찾고 있는 그들은 나보다 훨씬 쿨하고 현명하다. 그들은 내가 결혼으로 깨달은 교훈을 찾는 데 훨씬 짧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결혼하지 않지만 친밀하게 같이 사는 이들에 대한 관찰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