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서 있는지 결정하는 건 내가 그은 선이에요.
남이 그어놓은 선
그 안에 들어가려
온 몸을 던져
선명하게 보이지만
결코 손에 닿지 않아
원망스러워
선 안에서 희희낙락
웃고 있는 그들
선 안에만 들어가면
바랄 나위 없을 텐데
선 밖은 불행으로만
가득 차 있어
하루 빨리 벗어나
반드시 탈출해야 해
두 손 꼭 쥐고
악착같이 덤벼들어
숨 차 올라도
여기서 멈출 수 없어
반달모양 손톱자국
깊게 패인 손바닥엔
닳아버린 색연필
한 자루만 덩그라니
선 안의 사람들과
선 밖의 사람들을
선을 긋고 나눈 건
색연필 쥐고 있던 나
남이 만든 걸
보고 즐기는 건
진짜 내 것 아니야
지금 해야 할 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야
자전 속도를 뛰어넘어
눈앞에 선을 따라가려던
제자리걸음 이제는 멈춰
오늘 한 발 물러서도
내일 다시 나아가
매일 내 앞에
새로운 선을 그으며
내 손으로 그린 위도와 경도
그 곳이 바로
내가 서 있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