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보루스

식물가꾸기3

by 오동

결혼식을 준비하다 보면 이것저것 자잘한 선택들을 할 일이 많다. 예식장이나 드레스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부케를 고르는 것에는 조금 시간을 들여 알아보았다. 식물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것들은 결혼식 이후에 사진으로만 남지만 부케는 내가 애정하는 친한 친구에게 전달되어 친구의 집에서 며칠을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부케를 찾아보던 중 마음에 드는 생김새의 꽃을 찾아냈다. 이름은 '헬레보루스'. 크리스마스 즈음 꽃이 펴서 '크리스마스 로즈'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친구가 부케를 받을 예정이라 이 꽃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꽃잎이 붉은색을 띠는 것도 있지만,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흰색의 꽃잎인데 중앙으로 갈수록 초록빛을 띠는 오묘한 색상의 헬레보루스였다. 그 가운데에는 약간 형광빛의 연노랑 수술들이 가득한데 조화 같으면서도 단정한 모양새가 꽤 마음에 들었다.


다음으로 알아본 것은 헬레보루스의 꽃말이었다. 부케의 주된 꽃으로 쓰일 건데 노란 튤립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거나 수국의 '변덕과 냉정'과 같은 꽃말은 조금 곤란하니까. 헬레보루스의 꽃말은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 줘요', '내 마음을 달래주오'였다. 남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감정의 오르내림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반면 그는 감정 변동의 폭이 크지 않고 안정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동해 바다의 파도라면 남편은 호수 같다. 이런 점에서 헬레보루스의 꽃말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남편 몰래 나만의 의미를 담은 부케를 고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나의 헬레보루스 부케


문득 꽃말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전해져 오는 건지 궁금해졌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에서 성행했던 셀람(selam)이라는 풍습은 서로의 기분을 꽃 등의 물건으로 전달하는 문화인데, 여기에서 꽃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꽃말은 19세기 유럽 영국을 중심으로 식물학, 정원 조성 등이 발달하면서 유행했는데, 당시에는 직접 말할 수 없는 메시지를 꽃을 통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아 꽃말 사전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엄격한 격식을 요구하던 사회에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꽃다발을 선물했다니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누가 만든 지도 모르는 꽃말이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는 삐죽한 마음이 유래를 알고 나니 수그러들었다.

<효리네 민박 시즌2>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상순이 아내인 이효리에게는 '스타티스'를 윤아에게는 '노란 튤립'을 선물하며, 꽃말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스타티스'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노란 튤립'의 꽃말은 위에 언급한 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이상순의 센스와 세심함에 감탄했었다. 하나하나 의미를 생각하며 꽃을 고르는 일이 수고로울 수 있지만, 이렇게 가끔씩은 의미를 담은 꽃 선물을 하는 것은 일상의 즐거움이 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계속될 때 스스로에게 프렌치 메리골드 화분을 선물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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