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가꾸기1
아침형 인간, 계획형 인간, 내향형 인간 등 사람들의 유형을 다양하게 나눌 수 있지만, 나를 가장 잘 묘사한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식물형 인간'이다. 식물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인 광합성. 식물들이 햇빛을 오래 못 보면 아픈 것처럼 나는 흐린 날이면 수분이 부족해서 축 처지는 식물들처럼 몸과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럴 때면 햇빛을 보고 광합성하는 것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곤 한다. 휘인의 '광합성'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나는 네가 아무 생각도 말고 햇빛을 좀 받았음 싶어. 나는 네가 좋은 노래를 들으며 무작정 그냥 걸었음 싶어' 마치 누가 고민이 있거나 화가 났을 때의 나를 보고 가사를 쓴 것만 같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 혹은 더 이상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걸으면서 노래를 듣고 거기에 햇빛까지 함께한다면 금방 머리와 몸이 가벼워진다. 식물형 인간인 나는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이 많고 동경하는데, 식물의 많은 면 중에서도 햇빛과 물, 흙만 있으면 알아서 잘 살아가는 강인함을 좋아한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그가 자취방에서 키울 식물을 사주고 싶었던 키우기 쉽다고 알려진 다육이를 사줄까 하다가 어떤 식물에 관심 있는지를 물었는데 나는 키우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식충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대답을 들었다. 식충식물이라고는 파리지옥 밖에 모르던 나는 검색을 해보면서 무궁무진한 식충식물의 세계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선물한 식충식물 중 아직까지 살아남아 신혼집의 한 자리를 차지한 식물은 네펜데스인데, 일명 '벌레잡이통풀'이라고도 불리는 식물로 잎의 끝부분에 주머니 모양의 벌레잡이 통이 달려있어 곤충을 유인해서 잡아먹는다. (포켓몬 중에 우츠보트가 네펜데스를 닮았다) 처음에 분양받았을 때 크기는 작아도 주머니가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있었는데 3년 정도 지나고 나니 더 이상 주머니가 생겨나지 않고 잎만 무럭무럭 자라났다.
우리는 주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에 영양제도 주고,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한다기에 물도 자주 주면서 정성스럽게 돌봤지만 주머니가 생겨나가다도 말라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벌레로 영양분을 얻기 위해 주머니가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에 영양제를 주면 안 된다는 내용을 알게 되고, 영양제를 제거하고 무성했던 잎들을 정리해 주자 놀랍게도 주머니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한 모습인데 반대되는 상황에 처하게 했으니 본모습을 드러낼 리 없는 것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로 진화한 것처럼 자칭 식물형 인간인 나도 그들의 적응력을 닮아있다. 나의 아버지는 건설업에 종사하셔서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짧게는 2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그래서 초등학교는 총 4군데를 나왔고, 학기 중간에 이사를 다녀서 한 학년에 반이 2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수도권 안에서 옮겨 다니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장 먼 울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부모님이 모두 서울분인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사투리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을 텐데, 전학을 간 첫날 사투리를 바로 습득하였다.(물론 친구들이 듣기에는 엉터리 사투리였겠지만) 표준어를 쓰며 등교했으나 사투리를 쓰며 하교한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집에서는 표준어를 밖에서는 친구들과 사투리를 쓰며 울산에서의 시절을 보냈다. 나의 이 극강의 적응력은 어린 시절 수많은 전학과 이사로부터 다져졌다. 어찌 보면 또래집단과 어울리고 싶었던 한 어린이의 간절함이 느껴져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때 탑재한 적응력을 바탕으로 매우 원만한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어 나의 장점이 되었다.
나의 인생책 중 하나인, 나무의사 우종영 작가님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유명한 동화 때문인지 나무는 모든 것을 내주기만 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이다. 이런 낙천적이고 이기적인 나무를 보았나! 나도 자칭 식물형 인간답게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고 하루하루 뿌리내리며 나를 위해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