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by 스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하고도 7개월 지난 뒤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할아버지는 이미 닳을 대로 닳아진 건전지를 폐기하기 위해 억지로 질질 끌며 쓰는 것처럼 사셨다, 고 생각한다. 웃음도 전보다 확연히 줄었고 식음도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셨다. 자식들을 위해 그저 살아가고 있다,라는 것만 보여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결국 할머니 없이 2년 이상을 살 순 없으셨던 거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격하게 울었고 진심으로 슬퍼했다. 할머니가 나를 부르던 모습이 생각났고 나를 보고 웃던 모습이 생각났다. 아직도 나는 할머니 죽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늘 나를 지켜주고 있으며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다. 죽으면,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영혼이 틈틈이 살아있는 자들의 안위를 챙긴다고 나는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당황스러울 만큼 눈물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 말 하면 다들 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격하게 슬프지도 않았다. 안다, 나도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쓰레기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할머니가 돌아가신 시점부터 서서히 이 세계와 단절을 시작하셨다, 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이번에 도래한 것일 뿐이다. 어떠한 일이 인과론적인 원리에 의해 마땅히 일어난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번호표를 뽑고 순번을 대기하고 있었는데 띵동- 하고 순서가 도래했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할아버지 죽음은 번호표를 뽑은 것과 같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없는 삶이 그렇게 탐나지도, 살고 싶지도 않으셨던 것 같다. 자식과 손자, 손녀들 존재에도 불구하고.


오늘 장례식장을 늦게까지 지키던 남편과 통화하다,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마 환청이리라. 수화기 너머로 할머니가 누군가를 크게 부로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할아버지는 아마도, 할머니 곁으로 제대로 잘 찾아가셨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늘 내가 당신 곁에 계시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을 때면 큰 소리로 목소리를 내시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난 그 목소리가 그렇게 정겹고 든든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 두꺼운 조끼를 입고 허연 입김을 잔뜩 내뿜으면서 두부를 만들던 우리 대가족. 할아버지를 매의 눈으로 쳐다보며 두부를 이렇게 저렇게 저어야 한다고 잔소리하시던 할머니 모습. 하지만 이젠 그런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이젠 두 분이 다투시며 만든 두부를 절대 먹을 수 없게 됐다.


그래도 내겐 기억이 있다. 그 아득한 장면들이, 앞으로 남은 내 여생을 따듯하게 데워 줄 연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게 그런 연료 같은 존재셨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