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소나기가 초록빛 들판을 대차게 적시고, 해지는 노을을 뒤로하고 갯가에서 큰 나무막대기로 사촌오빠들, 삼촌들과 야구를 하던, 나의 아늑한 시골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어릴 때 난 시골을 싫어했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 되면 엄마는 적당히 내 눈치를 보다가 어김없이 시골로 데려갔다. 맞벌이었기 때문에 나와 어린 동생의 끼니가 걱정되셨던 거다. 오락실 게임기와 슈퍼마켓 과자가 더 좋았던 나는 시골보다 도시가 좋았다. 시골에 끌려갈 때마다 '말 잘 들을테니 제발 보내지 말아달라'고 엄마한테 애원도 해봤고 소리도 질러봤지만, 결국 종착지는 그곳이었다. 마치 끝이 정해져 절찬리 상영되고 있는 영화처럼. 열린 결말 따윈 없다.
아무튼 그토록 싫어했던 시골에서의 추억은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의 내게 연료가 됐다고 생각한다. 도시 생활만 해온 다른 사람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풍경과 냄새, 촉감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느끼며 미소지을 수 있다. 황금빛 논, 촉촉한 밭 그리고 황톳길, 드문드문 있는 집, 뭉실뭉실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커다란 느티나무, 도랑, 갯가, 그리고 연탄 태우는 냄새, 밥 짓는 냄새가 나를 따듯하게 해 준다.
하지만 그 시골, 이제는 보고 싶고 가고 싶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 됐다. 댐이 들어서면서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내 기억은 이렇게나 생생히 그곳을 기억할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어쨌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내가 그토록 시골에 가기 싫었던 이유는 엄마가 없는 곳이었어서다. 할머니는 엄했고 엄마는 나를 떼어놓는 그 순간만큼은 한없이 자비로운 모습이었다. 난 엄마가 나를 버리고 서울에 가는 게 그렇게도 슬펐다. 그래서 시골에서 잘 놀다가도 하늘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나, 귀를 기울였고 큰 구름이 두둥실 떠있으면 저걸 타고 서울로 갈 수 있으려나 했고, 멀리서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아득히 들리면 기사아저씨께 서울로 데려다 달라고 해볼까, 하면서 한없이 느리게 가는 시간을 때웠다.
아무튼 자꾸 미래보다는 과거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걸 보니, 틀림없이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아직 앞길리 구만리인데.. 그만 생각해야지. 그냥, 결론 없이 주절거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