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

by 스콘


최근 넷플릭스 블랙미러를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학창 시절 본인을 괴롭힌 애들을 찾아가 일일이 복수하는 거였다. 가끔 난 생각한다. 난 가해자였나 피해자였나.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나를 빼고 조별과제를 했던 6명의 아이들. 그중 3명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난다. 그중 몇몇은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며 나를 왕따 시켰고 내 책상 위에 욕을 써놨다.


걔네들한테 내가 크게 잘못한 건 없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속이고 따돌렸다. 문화체육회관 앞 계단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나 몰래 전화를 돌려 장소를 바꿨고 나는 그 자리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왔다. 엄마들끼리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내게 진실을 말하기 곤란한지 말을 흐렸다. 사실은 애들이 널 따돌린 것 같구나,라는 말을 하기가 두려우셨을 거다.


결국 그 사건은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묻혔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약간은 무안해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그들의 모습과 나를 빼고 만든 조별과제 결과물을 보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상처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게 내가 겪은 첫 번째 따돌림 인가?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때도 있었는데, 초등학교 땐 선생님들에게 받은 상처가 더 컸다. 그들은 낙인찍기를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너는 성적도 그냥 그렇고 인기도 별로 없고 키도 작고 이쁘지도 않고 그러니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살 거 같다, 는 세뇌를 내게 무의식 중에 계속해서 했다, 고 생각한다. 나는 실제로 그랬다. 튀지도 않았고 인기가 많지도 않았으며 공부도 잘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관심을 받고 싶었던 애였던 것 같다. 그래서 돈을 쓰기도 했다. 문방구에서 이쁘게 생긴 컬러풀한 지우개가 들어있는 통들을 사서 반 애들한테 그냥 뿌렸다. 애들은 관심을 보였고 담임선생님은 무신경한 표정으로 와서 내가 나눠주던 지우개를 무관심하게 보더니 무표정하게 돌려줬다. 애들은 지우개를 때만 내게 관심을 보였고 받자마자 다시 내게 관심을 껐다.


난 초등학교 때 그런 애였다. 중학교 때도 대체로 다르지 않았으나 한 학기 정도 반장을 하기도 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당시 후보군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잠시 인기가 많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확실히 모난 게 맞는 것 같다. 지금 연락하는 친구들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나는 그들과 관계가 틀어졌고 몇몇은 나를 최후엔 싫어했다.


서른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는 아직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냥 나는 방송기자를 하고 싶었고 내 목소리를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사랑스럽게 봐주지 않는 것 같다. 내 과거를 회상하면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얼굴이 벌게지거나, 이불을 차며 힘찬 기함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곤 한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기는 하는 것 같다 겉으로는. 달리기를 하고 요가를 하고 헬스를 하고 암튼 몸을 보기 좋게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근데 한 발짝 들어가서 보면 나 자신에게 사랑을 주고 있는 게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 사랑스러운 내가 되고 싶어서 운동을 하는 느낌이다.


남들이 보기에 살이 쪄 보이는 게 무서워서 그냥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것 같다. 아니 처음엔 내가 고등학교 때 나빠진 자세를 고치기 위해 나빠짐으로 인해 생긴 통증들을 없애기 위해 했다면 이제는 남들이 보기에 마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자세는 왜 나빠졌느냐, 이것 또한 나를 따돌린 애들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3학년 때 나는 처참했다. 애초에 MT를 가서 친해진 패거리 애들이 있었는데 그 애들과 노는 게 어느 순간 불편해졌다. 그래서 어느 날 봄 점심시간, 나는 그들과 겸상(?) 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짝꿍네 패거리에 붙었다.


짝꿍네 패거리는 처음엔 나를 잘 받아주는 듯했다. 하지만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나와 같은 아파트를 살고 나와 상당히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애가 나를 팽하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무리가 없어지고 약자가 되니, 이제 별볼이 없어졌다는 의미였다. 그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애는 매점에 가자는 나의 제안을 무시했고 노골적으로 나를 피했다.


점심시간 자리를 옮긴 것? 그래 내가 잘한 건 아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내가 잘했다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도 그들과 대화를 했다면 풀 수 있었겠으나 무슨 대화를 어떻게 어디까지 얼마나 한단 말인가. 난 그들이 어느 순간 불편해졌다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건 이후로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그렇게 겉돌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유학 이야기를 하며 울기 일쑤였고 하루빨리 추석, 하루빨리 연말, 하루빨리 2학년이 돼서 그들과 떨어지고 싶었다. 그들은 내 뒤에서 나를 보며 험담을 했고 어느 날은 앞담화로 나를 공격했다. 그들은 나를 매우 싫어했고 어쩔 땐 공격할 사람이 절실한데, 마침 내가 있어 잘됐다, 공격! 이런 느낌으로 나를 공격했다. 정서적으로.


고등학교 1학년은 악몽 그 자체였다. 당연히 성적도 좋지 않았다. 나는 망가지고 있었고 그 들의 눈에 최대한 띄고 싶지 않아서 쉬는 시간에 일부러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내가 상체를 조금만 세워 그들의 시야에 들어가면 그들은 내 험담을 했다. 또는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허리가 굽어졌다. 지금도 그 허리를 세우느라 고생 중이다.


그래 내 중고등학교 시기, 소위 학창 시절은 불행했다. 그리고 이때의 상처는 아직도 내 꿈에 가끔씩 이빨을 드러낸다. 꿈에서 가끔 나는 학교입구를 찾지 못해 땀에 흠뻑 젖어 학교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헤매곤 한다. 꿈에서 가끔 나는 학교 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서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있는데, 그 공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허덕이면서 잠에서 깬다.


사실 사소한 에피소드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려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현재의 나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일련의 사건들은 나를 위축시켰고 나 자신을 의심하게 했으며 나는 미움받아 마땅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한 번의 사건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건이 여러 번 반복되면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게 된다. 그리고 실제 일부 원인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안 그러려고 한다. 대충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이게 부족했구나라고 생각하고 결론이 내려지면 앞으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된다. 아직도 과거 내가 겪은 일은 가끔 바늘처럼 내게 쏟아지면서 나를 아프게 하지만, 앞으로의 나는 바늘에 시달리지 않게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과거의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근 핀터레스트를 뒤지다가 기분 좋은 문구를 하나 읽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략 말해보자면, 매력 있는 사람은 트라우마를 잘 정제시켜 승화한 사람이다,라는 내용이다. 과거 따돌림은 내게 분명 트라우마다. 그래도 난 이걸 잘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트라우마에 짓눌려 패배자로 남고 싶진 않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승화의 과정 중 하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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