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여자)을 보고, 자신의 ’취약점’이 건드려지면, 이빨을 드러낸다. 취약점은 뭐든 될 수 있다. 자신은 갖지 못했는데 상대방은 가진 것, 외모, 나이, 능력, 성격 등. 아무튼 평소 내가 갖추고 싶은 특정 요소가 있는데, 그걸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갖춘 채 나타나면 그냥 기분이 일단 나쁘고 시작한다.
적대감을 드러내도 주변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자신과 상대방만 알 뿐이다. 그마저도 상대방이 눈치가 없거나 또는 무척 쿨해서 ‘흥, 또 질투야’라고 생각해 버리고 무시한다면 그 적대감은 형편없이 바람이 빠진 풍선 꼴이 돼 버린다.
며칠 전, 한 저녁 모임에서 적대감을 겪었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 이상 많고, 미혼에다, 평소 외모에 관심이 많은 임원분이 내게 그것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기자들 네다섯 명과 한 번에 인사하는 자리였는데 분명 그분이 나를 봤는데, 우린 서로 아는 사이인데, 밥 먹으면서 한 시간 내내 이야기한 사이인데, 나를 못 본 체 하는 거였다. 그분이 다른 기자와 인사하는 동안 내가 바로 옆에 서서, 30cm 채 떨어지지 않은 데 서서, 인사하려고 빤히 쳐다봤는데, 내게 충실하게 옆모습만 보이면서 계속해서 다른 기자들과 인사하기 바빴다.
내가 그 이슈로 기분 나쁜 밤을 보내고, 긴 시간 생각해 본 결과, 그 임원이 만약 남자였다면 나를 모른 척하지 않았을 거란 결론을 냈다. 그분은 그냥 나를 멀리서 본 순간 알 수 없는 적대감과 감정에 휩싸여 아는 척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거고 그걸 실행에 옮긴 거였다. 내가 나중에 대놓고 절 아시지 않냐고 물어보니 하는 답이, 처음엔 당황하면서 ‘못 봤다 ‘였고, 생각해 보니 자기도 해명이 좀 이상한지 다시 한번 다가와하는 말이 ’봤는데, 눈인사를 한 줄 알았다’ 였다. 1년 반 만에 만난 사람한테 눈인사하는 사회적 에티켓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해졌으나 그냥 잊기로 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면, 나도 그래본 적이 있어서다. 아직도 그 적대감 드러낸 순간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고 부끄럽다. 대학교 때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정말 이쁘다고 생각한 한 여자애와 남자들과 섞여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 성격도 둥글둥글하고 무엇보다 정말 이뻤다. 내가 원하는 갸름한 얼굴형, 기분 좋게 찰랑거리는 생머리, 좋은 건 거의 다 가진 친구였다.
어느 날, 그 친구가 20분 정도 독서모임에 지각한 날이 있었는데, 이유 없이 그녀가 밉던 나는 지각한 친구를 사정없이 째려봤다. 주인공처럼 등장한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그 와중에 이쁜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 친구는 다행히 성격이 좋았기 때문에 내 적대감을 모른 채 해줬다. 솔직히 독서모임에 지각한 게 뭐 대수라고, 나는 전혀 그 친구를 째려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그 친구에게 발산하지 않고는 못 참았던 것이다. 지금 그 감정의 이름이 ‘질투’였다는 건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종종 아직도, 그 감정이 춤추는 걸 목도한다. 나 자신한테서도 다른 사람한테서도. 내가 그걸 겪어봤고 충분히 그걸로 힘들어해 봤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타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잘 안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감정은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느끼는 종류의 것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그 부족함을 유독 처절하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일수록. 그래서 평소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일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