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부터 체하면 머리가 아팠다. 손을 따기도 했고 약을 먹거나 병원을 가거나 냅다 자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이 체함이라는 녀석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아직도 노력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생각나는 전남친들과의 기억처럼 문득 눈을 떠보면 내 앞에 있다. 두통으로 나를 괴롭힌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사람마다 체했을 때 증상이 모두 다르다. 대부분 극적인 증상이다. 어떤 사람은 토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밥을 아예 먹지 못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속이 미식거린다고 한다.
나의 경우, 굉장히 증상이 은은하다. 주말 오전에 증상이 시작되며, 전체적으로 몸에 힘이 없는데, 이게 또 엄청 없지는 않다.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해나갈 순 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편하게 대화도 한다.
하지만 오른쪽 또는 왼쪽 관자놀이를 둔탁하게 두드리는 그 느낌이 결코 유쾌하지 않다. 이 두통, 이전엔 하루만 지나면 없어졌지만 나이가 먹으니 이틀, 길게는 삼일 간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관자놀이에서 누군가 계속 묵직한 북을 계속 울려댄다. 이게 근육과 관련이 있는지 갑자기 앉았다 일어날 때, 뛸 때 등 급작스런 근육의 움직임에 두통이 반응한다. 참고로 병원에서는 특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과연 나는 체한 게 맞나, 이건 단순 두통 아닌가.라는 생각도 당연히 해봤다. 결론은 체한 게 맞다. 속이 약간은 불편하고, 두통약을 먹어도 한두 시간이면 다시 올라온다. 내 생각엔 정말 두통이라면 약을 먹었을 때 최소 세네 시간은 증상이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건 단지 내 느낌일 수 있지만, 두통약을 먹어서 이 체함 증상이 줄거나 해소된다거나 없어진 적은 없다. 너무나도 심한 총상에 밴드 붙이기 격인 느낌이 들어 두통약은 먹지 않는다.
대신 나는 증상과 싸운다. 네가 언제까지 내 관자놀이를 조지는지 두고 보자,라는 느낌으로 기다린다. 증상과 싸우면서 찾은 한 가지 유력한 가설이 있다. 현재로선 다른 유력한 가설이 등장하지 않는 한, 95% 이상 확률로 맞다. 정말이다. 여러 자가 임상시험을 거친 것이다. 바로 '체력과의 비례설'이다. 내가 체력적으로 힘들고 고갈되면 체할 확률이 급격히 오른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나온 건 대학원 동기가 지나가며 한 말 때문이다. "당신이 체하는 건 체력과 관련이 있을 거요. 평일엔 일하느라 몸이 긴장해서 몸 느끼는 걸뿐, 주말이 되면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이제 고갈된 체력이 체함으로 나타나는 거 아닌가 싶소."
난 지금까지 이처럼 설득력 있는 가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하여 대략 3년 간의 자가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정말로 체력이 고갈됐을 때 체하는지 내 몸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특정 패턴이 보였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 기사 처리할 게 많았던 주, 전날 (술로) 달렸을 때 어김없이 체함 이가 노크를 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잉여로운 일상을 보내면 정말 하나도 안 체하나. 그래서 또 임상을 해봤다. 지난 몇 주간 나는 특별히 나를 힘들게 하는 일정 없이 주로 집에서 일을 했었다. 딱히 점심 저녁 약속도 없었으며 그저 집에서 기사만 쓰고 나머진 요리하거나, 자거나, 운동하거나 아무튼 잉여롭게 보냈다. 정말이지 이때 난 단 한 번도 체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내 체력을 잘 지키자, 그래야 잘 살아갈 수 있다,라는 것이다. 두통이 오면 당연히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난다. 책을 집중해서 읽기도 어려우며, 무슨 일을 해도 재미있지 않다.
체한다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사실상 내 일상을 쥐고 흔든다. 너무도 사소해서 글로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내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내 체력을 좀 더 면밀히 살피자, 그래야 이직도 하고 남편한테 짜증도 안 내고, 기사도 잘 쓰고,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