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과 수동의 그 지점 어딘가..
예전에 티비를 보다가 영업왕으로 유명한 분이 나와서 강연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고객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그는 최고의 영업비밀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고객이 이미 그 제품에 대해 충분한 지식과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 “이 기능의 장점은…” 하며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면 고객의 표정이 굳어진다. 이럴 땐 오히려 고객이 설명하게 하는게 판매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반대로 고객이 잘 모르는 새로운 기술이라면 영업사원의 말이 많아져야 효과가 있었다.
뭔가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득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보통 강한 주장과 확고한 신념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이 각각 다른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상대방에게 맞추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서 편안함과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고, 기준이 분명하고 당당한 사람에게서 믿음직스러움과 신뢰감을 느끼기도 한다.
수동성은 친밀감을, 능동성은 신뢰감을 만든다.
친구가 새로 산 운동화에 대해 신나게 얘기할 때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라고 물어보는 순간의 따뜻함이나, 복잡한 업무 문제 앞에서 “이런 방법은 어때요?“라고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의 든든함처럼.
그렇다면 언제 어떤 태도가 효과적일까?
그 답은 사람의 기본적인 심리 구조에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자신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서는 자연스럽게 적극적이 되고, 잘 모르는 영역에서는 조심스러워진다. 의사는 진료실에서는 당당하지만 법률 상담을 받을 때는 조심스러워지고, 요리사는 주방에서는 자신만만하지만 IT 기술 앞에서는 겸손해진다. 이는 자기보호와 자기표현이라는 두 가지 욕구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의 공식이 도출된다.
상대가 능동적인 상태일 때 내가 수동적으로 반응하면 친밀감이 생긴다. 상대가 수동적인 상태일 때 내가 능동적으로 나서면 신뢰감이 생긴다. 그래서 상대방의 심리적 상태를 먼저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상대가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일단 들어보고, 상대가 헤매고 있을 때는 조심스럽게나마 내 생각을 나눠보고.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게 정답일까? 경험상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들은 오히려 서로 부딪쳤던 순간들이었다. 충격적인 건 가장 큰 관계의 진전은 이렇게 맞추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맞서는 데에서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감을 보이는 분야에서 내가 또 다른 능동성으로 정면으로 맞서면 분명 불편한 긴장이 생긴다. 와인을 좋아하는 선배가 열변을 토할 때 “저는 그 와인보다 이쪽이 더 좋던데요”라고 반박하는 순간처럼. 두 개의 능동성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순간이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서로 미묘하게 불편해진다.
그런데 바로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서로를 그저 배경이나 청중이 아닌, 독립된 생각과 의견을 가진 주체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과 반이 충돌해서 합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발전의 순간인 것이다. 불편하지만 때로는 이런 정면승부가 관계를 한 단계 더 깊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