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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Nov 27. 2021

[에세이] 감사하는 마음

오래된 기억의 소환

감사란 삶의 여정 곳곳에 쌓여있는 먼지와 같아서,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다가도 먼지떨이로 한 번만 툭 건드리면, 방 안 그득히 채울 만큼 가득하다는 것을 곧 깨닫고 만다. 오늘날의 내가 있기까지 절체절명의 순간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감사의 마음을 먼지처럼 쌓아만 놓았지 제대로 된 표현을 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먼지떨이로 한 번만 툭 건드리기만 해도 될 것을 왜 그리도 어려워했는지 모르겠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분은 바로 Alan Wier 은사님이시다. 20대 초반의 나는 멋도 모르고 미국 유학을 떠났는 데, 유학 생활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분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이분은 학교 방문 첫날부터 영어 한마디도 하기 어려워했던 나를 불러 놓고, '이제부터는 한 시간씩 내 방에 와서 아무 이야기나 하고 가라'라고 학업과 상관없는 언어생활 자체를 보살펴 주신 분이었다. 그분은 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인 나에게 귀중한 시간과 따뜻한 배려를 나누어 주셨다.


그분의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나의 유학 생활은 몇 배나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분의 배려로 다른 유학생보다 더 빨리 학교생활과 문화에 적응할 수 있었고, 덕분에 유학생 장학금도 받고 연구 조교일도 맡아서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어려서 공부에만 집중하느라 그분께 직접적으로 감사 표현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분은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는 삶을 직접 실천하시는 진정한 교육자셨고, 그 경험이 나에게 각인되어 지금 교직 생활 마음가짐의 기본이 된 것 같다.


그분이 나에게 연구 조교로 역할을 준 것은 사이버 공간 상에 인체 모형을 만들어 제품을 사용하게 하는 인체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아쉽게도 그 생각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고, 내가 가진 기술로는 그분의 계획을 온전히 도와드릴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 감정이 앞섰고, 감사의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금 그분은 내가 공부하던 그 대학을 떠나 다른 학교로 직장을 옮겼다고 어렴풋이 전해 들었다. 그분이 현실파던 이상파던 상관없이 내가 그분께 감사를 드릴 이유는 차고도 넘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연락을 드린 적은 없다. 나 때문에 프로젝트에 성공하지 못해서, 학교를 옮기신 것은 아닐 텐데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은 아닌지. 지금 연락을 드리면, 기억은 하시려나? 싶다.  




두 번째 분은 바로 Vesna Popovic 은사님이시다. Vesna Popovic 교수님 하면 'Just Do It'이 항상 떠오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스스로의 생각에 디자인학 박사 과정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JUST DO IT'을 외치며 딴생각을 하지 못하고 학업을 이어가도록 붙들어 주신 분이다.


한국에서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혈혈단신으로 호주 유학길에 나섰던 나는 '공부를 할 거라면 미국에 가서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공부보다는 실무를 더 해야 하는 건 아닌지와 같은 질문으로 나 자신을 괴롭힐 때가 많았다. 내가 한국에서 받던 수입의 10분의 1로 호주 생활비를 감당해 나가면서, 내가 하는 공부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교수님은 강단 있게 말씀하셨다. "딴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한국에 머물면서 원격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한국에 있으면 집중해서 공부할 수 없다 하고 비행기를 타고 3개월 만이라도 호주 학교에 와서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고 하셨다. 호주 QUT 대학교 박사과정은 일 년에 두 번 학교 당국에 과정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 보고서가 위원회를 통과해야만 장학금을 계속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매번 호주에 입국할 때마다 나는 중간 보고서 제출일을 출국 일자 바로 전날로 학교에 통보하고, 벼랑 끝 전술로 교수님과 기 싸움을 하던 기억이 있다. 어차피 제출일을 더는 뒤로 미루지 못하니, 교수님께서도 빨리 수정본에 OK를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출국 일주일 전부터 밤을 새워 보고서를 작성하고 하루에도 수정 버전을 몇 번씩 교수님께 제출하던 기억이 새롭다. 늦은 시간인데도 교수님은 매번 수정된 보고서를 꼭 읽고, 수정 사항으로 퇴짜를 놓으면서 보고서의 질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 때 내가 Vesna 교수님께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포기를 모르는 꾸준함과 끈기다. 섬세하고 꼼꼼하고 끈질긴 지금의 성격이 호주 박사 과정 중에 교수님께 무의식 중에 단련받은 것이다. 그 당시에는 교수님의 독단과 고집스러움에 원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의 단단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역할이 8할 이상이다.


Vesna 교수님의 연세가 많으셔서 지금은 학교에서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함께 수학하던 동료들이 학교에 남아 교직을 담당하고 있으니 코로나가 끝나면 반드시 호주 학교에 다시 한번 방문할 예정이다. 학교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감사함이란 마음 한쪽에 쌓아놓은 먼지와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감사함이란 고구마 줄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한 번 터져 나온 감사함의 기억은 캐고 캐고 캐도 계속 이어져 나온다. 나라는 사람이 지금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이유는 인생의 특정한 순간에 스며들어 나를 보듬어주고, 나를 단련시켜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감사함은 찾으려고만 하면 넘쳐난다. 오늘 목적지까지 무사히 태워주신 버스 기사님에게도 감사해야 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제주도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그동안 어색해서 혹은 미안한 마음에 감사함을 표현하지 않고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하루에 일정 시간을 내어 일상에서 감사함을 느껴보는 훈련을 해보자. 감사함을 표현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안한 감정때문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숨겨왔다면,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감사를 표현해보자. 인생에 무엇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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