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서백일 Nov 29. 2021

[에세이] 내가 외쳐야하는 이유

조직 내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럴까?



효율성의 칼날에 조직원의 자존감(?), 사기(?), 참여 의지(?), 안정감(?) 등이 날카롭게 베어나간 적은 없을까? 조직이 빠른 결정을 내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며, 생존 능력을 향상해나가는 것이 조직의 존재 이유인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시대정신이 낳은 괴물이 바로 조직 내 카르텔이다. 카르텔이란 쉬운 용어로 선 긋기인데, 집단 내에 선을 그어 놓고 내 편과 아닌 편을 갈라놓아 의사 결정 과정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다. 


선 밖에 있으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의견 배제 현상이 일어나고, 그 의견 배제 현상이 반복되면, 더 자연스럽게 이상한 의견을 내는 사람으로 매도된다. 혹은 의견 무시 현상을 반복 경험하게 되면 참여 의지와 열정이 식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열심히 준비해서 제시한 의견이 무시될 때마다 "괜찮아. 조직 내에서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내어 결정한 것이니 더 좋은 의사결정을 했을 거야!"라고 자위하거나, "나는 괜찮아. 다른 무시당하는 사람도 있는데"라며 침묵하는 것이 조직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이 될까?


침묵하는 것에는 '힘'이 있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침묵에는 '금'도 있다고 명언 집에서 배웠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체로 이해할 수 없는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눈감고 침묵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얻은 것은 '마음의 평온'과 '약간의 비굴함'이다. 딱히 큰 '힘'이 생긴 것도 없고, 그렇다고 '금'이 충분히 쌓인 것 같지도 않다. 흥도 나지 않고 조직에도 큰 도움이 안 되는 '침묵'이라는 것을 왜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거지?


조직 내 카르텔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 아니다. 조직 내 카르텔의 집단적 복수가 두려워서 일 것이다. 집단에서 선 밖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사를 주장함에 있어 집단 앞에 언제나 취약한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렵다고 두려워서 비굴하게 집단의 평온을 택하기보다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면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다. 


선 긋기가 당연하고 소수인 쪽이 전체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는 순간, 다수의 생각과 행동은 소수에게 폭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소수가 큰 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 때 소수가 전체 집단의 평온을 깨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소수를 대변하는 소수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지금 우리 사회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 조금은 더 성숙한 사회로 전진하고 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전체 집단의 효율성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되어도 좋다. 무의식적인 선 긋기 집단의 모습에 큰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집단 내 소수인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더 좋고 성숙하고 일할 맛 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