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서백일 Jan 06. 2022

새해에는 소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흰색이었다.

찬란한 흰색이었다.


펄 화이트 색상이라고 하는 게,

멀리서 봐도 고급지게 흐들거렸다.


SUV 차량이었고, 네 개의 바퀴가 모두 움직이는 4 Wheel이었다.

뒷좌석을 접으면 두 명은 누워서 충분히 차박이 가능할 만큼

크기도 큰 차였다.


21년 12월 31일이었다.


아내의 친구가 적당한 가격에 서울에 한 대밖에 없는 차량을 구매했다는 말에 자극받아, 바로 다음 날에 전국 매장에 수배령을 내려 어렵사리 찾아낸 차량이었다.


그런데 그저 그랬다.

차량을 인도받는 순간 가슴이 뛸 줄 알았는데

내 가슴은 그저 그랬다.


새로 구입한 차량을 몰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물어온다. "올해 계획이 뭐야?"

"어? 어. 올해는 열심히 살지 않으려고. 자동차 새로 샀으니 열심히 여행 다니고 놀러 다녀야지. 그리고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 되야지. 핫핫. 멋지지 않아?"


그러나 아내는 내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본인이 할 말이 있었을 뿐이었고, 예의상 기다려준 것뿐이었다.


"어! 나랑 다르네. 나는 정초에 무언가 하겠다고 마음먹고 연말에 보면 꼭 실행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올해도 목표를 세우려고 해. 난 로스팅 수업은 계속 들을 예정이고, 또 제과 제빵 자격증에 도전해 볼 거야. 제과 제빵을 내가 직접 해야 학원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겠더라고. 그리고 교육비는 이래저래 조달해볼 계획이고...."


나의 멋짐은 소리도 없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어! 내가 알고 있던 마나님이 아닌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실행계획을 마련하는 안사람이 생소하기까지 했고, 곧이어 내가 아주 부끄러워졌다.


멋지게 사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목표라면, 적어도 새해 소망 정도는 줄줄 읊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직 버킷리스트가 없구나라는 뒤늦은 깨우침에 아티스트 데이트 과제를 핑계로 소망계획을 작성해보기로 한다.


첫째, 초보 카박 캠핑러되기.

내가 멋지게 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꼭 카박 캠핑을 하리라. 영하의 추위에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공간에 가서, 불편하고 외로운 침낭 속 잠자리와 새벽의 차가운 안개를 즐기리라. 처음 한 두 번은 불편함과 불쾌함에 몸을 흔들어 후회하겠지만, 안전한 심리적 경계 영역을 벗어나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함에 푹 빠지고 말 것이다.


처음에는 멋졌다.

그런데 어라~ 한편으로는 이건 아닌데 싶었다.


내가 바라는 새해의 모습은 생각 없이 느끼고 저지르고 싶은 것을 그 자리에서 해치우는 그런 모습은 분명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멋진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멋진 삶, 그리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이 그저 자유 추구라는 '허세'로 '새롭고 남다른 일'을 저지르려고만 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글 쓰는 시간을 줄여야 하고,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골프 연습 시간을 조절해야 하고, 그리고 캠핑을 가기위해서는 글과 그림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허덕이는 삶의 늪에 빠져드는 모양새였다.


즉, 카박 캠핑러가 되겠다는 새해 소망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한 가지 더 해 보겠다는 희망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듯 했다.


2022년 새해는 뭔가 달라진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2021년이 아티스트로 태어난 원년이라면 2022년은 '진짜' 나의 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는 한 해가 되면 한다. '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려면 저지르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라는 장강명 작가의 어록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도대체 나에게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나 스스로를 제대로 관찰하여 나 자신에 대해 정교하게 답을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개똥철학이라도 좋으니 나만의 철학을 세우고 그 철학으로, '그림', '에세이', '공상과학소설', '골프', 그리고 '캠핑'을 하는 이유를 찾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의 밀도를 높여야겠다고 소망한다.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나는 2022년에는 진짜 나로 존재하기를 학수 고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용자를 이해하는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