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서백일 Jan 30. 2022

새해 소망 점검기

다른 건 몰라도 뺨과 코에 스치는 생소한 기운이 낯설었다.


마치 얼굴 부분만 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첫 겨울 차박치고는 그래도 잘 견디고 있었는데,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잠들어도 괜찮을까? 이렇게 졸린 게 정상일까?


차량의 시동을 켜니 계기판은 영하 9도를 가리키고 있다.



호기롭게 오늘 차박을 하고 집에는 안 들어가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침낭 밖의 세상은 침낭 안의 따뜻한 감각에게 계속해서 "침낭을 믿지 말아, 믿지 말아. 이러다 얼어 죽을 수도 있어!"라고 주문을 건다. "충분히 잤잖아! 이만하면 차박 성공이야!"라는 유혹도 거세진다.


집까지의 운전 거리는 44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집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침낭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면 그나마 따스한 공기를 만날 수 있었지만, 답답함에 머리를 빼꼼히 내밀면 지금 이 공간은 내가 상식적으로 견딜 수 없는 공간임을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올해 초 나의 새해 소망은 "멋지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였다. 나름 마음에 들었지만,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멋진 삶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아름다운 삶이란 말인가! 당당하다는 것은 뭐지?


나름대로 멋지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을 정의 내려 볼 요량이었는 데, 웬걸 "구걸하는 삶에서 베푸는 삶으로 바꿔보기"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우연히 떠오른 실행계획에 우선 꽂혔다. "그래, 남들이 다 하는 트렌디한 것들을 허겁지겁 따라서 하다 보면, 내가 정작 베풀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을거야! 지금이라도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3년 후, 6년 후에는 내 경험으로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어!"라는 결심으로, 정초부터 팔당댐 차박 여행을 감행한 것이었다.


내가 숨 쉴 때마다 실내 차창에는 뿌연 서리가 날카로운 선을 그리며 만들어졌다. 내가 고개를 침낭 안으로 들이밀면 서리는 없어지겠지 하는 생각이 이대로 다시 잠이 들면 저 서리처럼 없어져 버릴 수도 있을 거야! 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침낭 안에 들어 있는 몸뚱아리를 끄집어내야만 했다. 침낭 안에는 핫팩을 3개씩이나 집어넣어서 제법 온기가 있었지만, 그대로 다시 잠을 청하기에는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의식을 깨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이 서린 차 문을 열고, 신발을 챙겨 신고 차 밖으로 나오니, 탁 트인 밤하늘에 별빛이 맞아주었다.


신기한 듯 하늘의 별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았다.


별은 원래 거기 있는 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나라는 인간의 눈에서 도심의 빛을 걷어내자 자신의 민낯을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존재였다. 차가운 공기와 불편한 잠자리를 감수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선물이었기에, 감사한 마음 반 경건한 마음 반으로 쏟아지는 별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었다.


차가운 공기와 불편한 잠자리는 어쩌면 내면의 아름다운 민낯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통하여 도심의 화려한 불빛을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만, 짧고 강렬한 내면의 원래부터 존재했던 나 만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면은 이미 자체 발광 중인데, 남들이 우러러보는 별이 되려고 잘못된 방향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겨울 찬 바람에 정신이 번뜩 들며 반성하게 된다. 인생에서도 차가운 공기와 불편한 잠자리를 감내할 용기만 있다면 언젠가는 빛나는 내면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나는 때가 올 것이라 조금은 믿는다.


익숙하고 따뜻한 잠자리를 뒤로하고 강행한 첫 겨울 차박은 결국 남들에게 이야기할 만한 이렇다 할 특별한 추억을 남기지 않았지만, 소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기회와 그를 통해 삶을 대하는 단순한 태도에 대한 강렬한 배움을 남겼다. 난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면에서 불타오르는 따스하고 당당한 자아를 찾겠다는 나의 새해 목표는 앞으로 3년을 주기로 꾸준히 실행이 필요한 부분이다. 부디 별을 보았을 때의 그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느슨해지는 나의 마음을 다잡아 주는 청량제의 역할을 3년 내내 해주기를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불편한 편의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