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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Jun 04. 2022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 9

요즘 중 3의 생활이야기

잠자고 있는 희람이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장비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흰색 철판을 직각으로 구부려 만들어 놓은 듯한 70년대 스타일의 사제 장비가 많았다. 버튼과 다이얼은 큼지막했고, 버튼의 이름은 매직으로 쓰인 부분도 보였다.


모니터링 룸에서 희람이 엄마와 함께 모니터를 주목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은 의사라기보다 동네 전파상 아저씨의 모습에 좀 더 가까웠다. 쌍꺼풀 깊은 커다랗고 선한 눈매에 두툼한 입술, 그리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이 더벅한 머리모양이 신뢰감이 가는 세련된 요즘 의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잠꼬대가 심해지는 희람이를 CCTV를 통해 보고, 그 옆에 있는 각종 장비에 기록되는 복수의 이미지를 보고 복합적으로 꿈의 세계를 구축하는 듯 보였다. "엄마! 엄마가 잘못했잖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라고 잠꼬대하는 순간이 꿈의 세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트리거(Trigger)가 된 듯했다.


"이제 거의 다 완성됐습니다. 어머님, 이 장비를 착용해보시겠어요?"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링 장비 앞에서 한참 동안 무언가를 조작하는 듯하더니, 서랍에서 안대 모양의 검은 색안경을 하나 꺼내 희람이 어머니에게로 다가왔다.


"네! 네? 아, 이런걸 써야한다고요?" 희람이 엄마는 당황해했다. 희람이 엄마는 처음에는 단순히 희람이가 기민증인가 아닌가를 검사하기 위해 병원에 온 것이었다. 희람이가 무슨 꿈을 꾸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민증 여부를 판단하고, 기민증이라면 기민증을 위한 약을 처방받기 위해 이 병원을 찾아왔던 것이다.


"선생님, 그냥 약 처방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며, 희람이 엄마는 의심스러운 눈치로 의사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아! 놀라셨군요. 대부분의 학부모님이 처음에는 놀라시더라고요. 제가 깜빡 잊고 설명해 드리지 않았네요. 이 장비는 희람이가 심하게 잠꼬대하는 순간부터 전후 10분간을 가상 현실로 구성하여 볼 수 있게 해주는 장비입니다. 용량에 제한이 있어 희람이의 꿈을 실시간으로 구성하여 볼 수는 없지만,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중심으로 총 20분은 둘러보실 수 있으니, 희람이의 꿈 속에서 희람이의 기민증을 일으키는 요인을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보실 수 있을겁니다."


선생님의 설명은 예상외로 길고 단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님의 도움이 희람이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필수적입니다."라는 멘트에서 희람이 엄마는 피해 가려고 해도 피해 갈 수 없는 엄마로서의 무거운 굴레를 느꼈다.


"그럼 제가 이 장비를 쓰고 무엇을 해야 하나요?" 희람이 엄마는 처음보다 많이 누그러진 태도로 의사선생님께 물었다.


"희람이는 지금 꿈에서 무슨 사건을 겪고 있어요. 어머님은 그 사건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사건에서 기민증과 관련된 무슨 단서는 없는지를 찾아보시고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자~ 이제 시작하실까요?"라며 의사 선생님은 희람이 엄마를 다시 한번 채근하였다.



창조성을 가로막는 걸림돌


희람이의 작품을 상영하고 있는 극장 안은 관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작품이 상영되고 있는 동안, 희람이는 작품에 빠져든 관객의 얼굴을 주목하고 있었다. 한결같이 희람이가 만든 작품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관객석에서는 조명 감독, 음향 감독, 의상 감독, 미술 감독도 보였고, 저 멀리 앉아있는 주연배우와 조연배우도 함께 보였다. 모두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희람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주어, 전체 작업의 완성도를 함께 끌어올린 주역이었다. 희람이는 그 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감사의 마음으로 울컥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관객은 작품이 감동적일때마다 좌석에 있는 '좋아요'버튼을 누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관객이 누른 '좋아요'버튼은 극장 오른쪽에 마련된 전광판에 하트마크의 애니메이션으로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작품이 상영되기 전부터 전광판은 하트마크의 애니메이션이 넘쳐나서 그냥 원래부터 핑크빛 전광판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관객은 희람이의 작품을 처음부터 사랑해주었다. 희람이는 사랑받는 것이 좋았고, 이런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기깅~~"하며 영화관 앞 좌석에서 큰 소리가 났다. 관객들은 스크린에 주목하여 작품을 보다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희람이의 엄마와 닮은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 여인은 이곳이 신기한 듯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데 정신이 팔려있는 듯했다. 관객의 시선이 엄마와 닮은 여인에게 집중된 순간부터 영화에 대한 실시간 '좋아요' 반응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상영관 오른쪽의 전광판에는 하트 애니메이션이 움직이는 것을 하나하나 자세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희람이 눈에 빠알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안경을 썼지만, 덩치로 보나, 움직임으로 보나 엄마인 것이 분명했다. 이 공간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한 여인 때문에 관객은 다시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웅성대고만 있었다.


"엄마!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잘못했잖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라는 목소리가 영화관 반대편 앞좌석까지 닿을 수 있게 희람이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엄마만 끼어들지 않았어도 내 상영회가 이렇게 망하지는 않았을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희람이는 평소 자신을 믿고 내버려 두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치밀어올랐다.  



메타버스의 세계


희람이 엄마는 드디어 검은색 안경을 썼다. 모니터링룸 자체도 어두웠지만, 안경을 쓰자 더 어두컴컴해졌다. 조금 집중하고 있으려니, 눈 앞에는 대형 스크린에서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것이 보였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모두 영화를 보지않고 희람이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희람이의 꿈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 속으로 잘못 들어왔나?" 어색하고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희람이를 위해서 조금만 더 참고 머물러보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누구지? 여기는 어디야? 희람이는 어디있는거지?"라고 생각하며 희람이 엄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희람이를 찾기 시작했다. 희람이를 찾는다면 도대체 꿈 속에서 왜 그렇게 큰 소리로 잠꼬대를 했는 지 그 상황과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엄마!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잘못했잖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희람이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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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창조성을 촉발하는 핑크색 시럽을 마신 후 중 3인 희람이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일상의 변화를 그려낸 생활 밀착 판타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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