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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Apr 17. 2023

전시를 마무리하며

23년 4월 17일

전시는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을 의미합니다.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모든 치부가 공개되니까요. 하지만 아티스트는 그런 아주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업가와도 비슷한 면이 있죠. 왜 그런 위험한 일을 자초해서 할까요?


첫째는 자신이 갖고 있는 평범한 (세상을 살아나가기에 아주 부족함이 없는) 능력 속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 특출 난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비슷한 시간을 투입했을 때, 유별나게 특출 난 능력의 씨앗이 보인다면, 그건 재능이 맞습니다. 


아티스트가 전반적으로 수준이 떨어지고 만족스럽지 못한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는 세상에 모든 면을 골고루 잘하는 인간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발판 삼아 집중과 몰입의 지속할 수 있는 뾰족한 능력을 찾을 수 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아티스트의 편일 겁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아티스트는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출 난 재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니까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위험을 감수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흔히 데뷔라고 하죠. 그래서 전시 한 번 하면 인생이 확~~ 뒤바뀔 것이라고 기대합니다만, 세상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뛰어난 기획자가 전폭적인 지지와 투자를 하는 아이돌 데뷔는 사정이 조금 다르겠지만요) 대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전문가 비평과 노력부재에 대한 자책에 시달리게 되죠. 하지만 심난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리며 전시장을 나서며 결국 이 한 마디를 하게 됩니다.


자! 이제 시작이야!  


둘째는 이것이 진짜로 중요한데요. 방황의 시간을 멈추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요? 세상에는 잘하는 아티스트가 넘쳐납니다. 이 아티스트를 보면, 선을 너무 잘 쓰고 또 저 아티스트를 보면 색을 너무 이쁘게 잘 사용합니다. 자신만의 개성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죠. 어느 아티스트는 디지털로 그림을 너무 멋지게 그리고, 어느 아티스트는 아크릴을 잘 사용합니다. 어느 날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서 면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기도 하고, 또 다음 날은 지금 잘 사용하고 있는 선을 조금 더 명인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욕심 때문에 선을 배우러 간 곳에서 면을 시도하려 하고, 면을 배우러 간 곳에서 선을 시도하려고 하는 방황과 혼돈의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면서 아티스트란, 역시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지" 


라며 자기 위안을 합니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이 주목받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인생이 너무 바쁘다고 생각이 든다면, 지금 하는 시도와 실험이 혹시나 '방황'이 아닌지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이벤트가 자신의 작품을 공공의 장소에 공개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로서 비평가와 관객과 직접 만나는 이유는 다음번 작업에서 처절하게 방황의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작가 나름의 노력이라고 봅니다.  


셋째는 삶에서 풍요와 여유를 찾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요? 휘게(FIKA), 워라벨, 힐링(Healing), 취향존중 등 삶에서 풍요와 여유를 찾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대세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고, 그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삶에서 욕심과 방황은 걸러지고, 진정으로 풍요와 여유로움이 넘쳐나게 됩니다. (희망사항입니다)



무엇보다 아티스트는 자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라는 가장 위험한 방법으로 가장 평안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전시를 마무리하며 깨닫게 된 점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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