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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Jun 09. 2023

미래에서 온 물건

2023 speculative summer camp를 마무리하며


여러분은 미래에서 온 물건을 디자인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근래에 아주 작은 회사를 위해서 미래를 위한 물건을 디자인해 본 적은 있지만, 미래에서 온 물건을 최근까지 디자인해 본 적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미래에서 온 물건? 아주 어린 시절을 빼고는 디자인교육을 받은 이래로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은 드물었습니다. 아마도 현재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현재의 문제에 집중하는 훈련을 디자이너의 생각법으로 습득했기 때문은 아닌가 반성해 봅니다.


사실 디자이너는 미래를 그리고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서 온 물건을 상상하는 시간 혹은 만들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디자인 교육은 "지금 현재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해서, 미래 물건으로 구현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미래에서 온 물건을 디자인하라.


라는 지시서를 받아 들면, 당장에 지금 현재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시사점부터 발견하려 합니다. 현대 디자인 교육의 장점이자 폐해죠. 어린아이처럼 상상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 상상이란 것을 하고 싶어서 디자인을 시작했는데도 말이죠. 문제를 시스템적인 사고 체계로 해결하려는, 한 가지 방법 만이 살아남아 디자인 교육을 지배하는 현시대의 획일화된 자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디자인 from 퓨처" 워크숍은 이 시대 디자인 교육계가  처한 시스템적인 사고방식 혹은 획일적인 문제해결 방식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디자인 사고의 대안적 사고방식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6월 12일부터 16일까지 사디에서 열렸습니다.


워크숍 연사가 "미래에서 온 물건"은 이런 게 있어!라고 예시로 보여주었는 데, 이 물건은 정말로 지금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물건많았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 번 보고 나면 "어! 그럴 수 있겠네!" 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정말로 미래에서 온 타임머신에서 발견될 법한 물건이었죠.

한국인 팽민욱 씨도 이 번에 워크숍 튜터로 참여했는데요. 위 이미지는 그가 디자인한 "세 번째 눈"이라는 물건이었습니다. 항상 스마트폰을 보고 길거리를 걷는 사람을 위한 미래에서 온 물건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미래의 인간은 지금보다 더하게 항상 스마트 폰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 세상을 살아거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안전사고에 더 자주 노출될 수밖에 죠.


미래의 인간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 문제를 핸드폰 액세서리로 해결하고자 사람의 눈을 대신해서 주변 위험 요소를 감지하고 알려주는 "세 번째 눈"이라는 물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바로 위 사진에서 왼쪽 여자가 머리에 쓴 미래에서 온 물건인데요. 말도 안 되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꼭 미래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오는 처럼 듣고 나면 말이 되는 스토리가 숨어 있네요.


팽민욱 씨도 처음에 이 디자인을 발표하고 나서는 "미친놈"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하니, 디자인 업계의 표준화되고 고착된 사고체계가 얼마나 무서운 지 실감했다고 합니다.


사디에서는 2022년에 처음으로 RCA학교의 GID프로그램에 다니는 대학원 학생들이 주도하는 "미래에서 온 물건을 디자인하는 워크숍"을 여름방학 동안에 개최했었는데요. 솔직히 2022년에는 RCA에서 워크숍을 함께 하자고 했을 때, 거의 거절할 뻔했었습니다. 바로 코로나 때문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들어온 RCA학생들이 철저한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또한 서울여대와 한국공학대학교가 같이 공간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겨우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도에 워크숍 관련 일어났던 일도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정말로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습니다. 또한 위기가 기회가 되는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형식으로 학교 간의 성공적인 협업의 한 모델을 구축한 사례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한 번 브런치스토리로 정리해서 올려봐야겠다는 생각굴뚝처럼 올라옵니다.


2022년에는 정말로 간단하고 가볍게 재미있게 코로나로 지친 마음을 딴생각하며 놀아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워크숍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2022년 워크숍을 끝마치고 나서도 "이런 방법론이 대체 디자인 교육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워크숍 결과물이 황당한 물건을 상상하는 데서 그쳤기 때문인데요. 결과물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자리에서 조차도 이 워크숍을 왜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재미있으니까요"라는 대답 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2023년에도 거의 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하였습니다. 워크숍 전반부에는 여름 방학인데, 쉬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이번 워크숍에서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을 압도했었습니다. 조금 지치고 기운 빠지는 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워크숍 중간인 수요일이 되자 "앗! 이것이구나! 이것이 디자인 교육에 대한 대안적 접근법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우연히 넣게 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의미하는 sustainability라는 이번 워크숍의 주제어 때문이었는데요. 처음 논의 단계에서 없었던 단어로, 마지막 순간에 추가로 넣게 된 운명의 단어였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현재 우리 세대의 니즈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발전이 우리 다음세대의 니즈와 욕구를 희생해서는 안된다"라명제가 있는데요. 바로 "미래의 인간을 위한 물건을 디자인해 보자"라는 이번 워크숍의 철학과 딱 맞아떨어지더군요.


즉, 이 디자인 방법론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적합한 디자인 방법론이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디자인 사고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결안이 미래세대의 욕구와 필요를 해하지는 않을까? 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여유도 방법론도 없었습니다.


지금 제시하고자 하는 해결안이 미래세대의 안정적인 발전에 정말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해결안일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철학적 힘을 "미래에서 온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 디자인 방법론으로 녹여놓을 수가 있겠더군요.


이런 큰 대의가 숨어있었기 때문에 현재 선진 디자인교육계는 이러한 생소하고 생경한 "미래에서 온 물건"이라는 디자인 방법론에 관심을 기울이고 철학을 만들고, 실험하고 실천하고 전파하는 것이라 스스로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런 방법론이 유일한 접근법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원래부터 자신의 업이라고 믿어왔던 "상상하는 힘"을 발견하고, 훈련하고,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디자인 업계에서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한 가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의 씨앗 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연구와 개발과 실천이 남았습니다. 단순 재미와 호기심에서 거대한 숨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RCA GID프로그램과 IDE졸업생, 그리고 참여해서 열정을 불태운 sadi, 서울여대, 한국공학대학교  학생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김억 교수님. 정영욱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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