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토신이 도파민에 묻는다
"자, 이것은 Rhino Grasshopper에서 선을 생성할 때 사용할 수 있는 c sharp code입니다. 이제는 코딩을 배울 필요도 없이 ChatGPT가 필요한 코드를 생성해 주니, 우리 디자이너도 쉽게 code를 사용해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교수님! 교수님 INTJ 시죠?
처음에는 이 물음의 의도를 잘 몰랐다. 그리곤 이렇게 답했다. "응, 가끔은 INFJ도 나와! 하지만 INTJ가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하고 말을 흐렸다. "디자인하는 사람은 모두 INTJ 성향을 갖고 있지 않니?"라고 말을 흐리는 데, 저쪽 테이블에서 "교수님, 1학년때 수업 어려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라는 이야기가 호프집 스피커 음악소리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교수님. 지난 학기, 저 이 악물고 수업 들은 거 아시죠?"
"어~ 이 친구들이 오늘, 속내를 드러내는 날인가?"
"그래도 새로운 것을 배우니 재미있지는 않았니?" 그 자리에서는 나름 변호하는 말을 내뱉었지만, 집에 오는 길에는 'INTJ 성향의 특징'이라는 검색어를 타이핑하는 나와 마주했다. INTJ, INTJ 생각하는 구조가 다른 사람? 새로운 사상과 체계를 시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생각이 미래에 가 있는 사람?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 만을 말하려고 하는 사람? 공감력이 부족한 사람? 이란 검색 결과와 마주하며, 학생들이 나를 INTJ로 규정지으려 했던 의도를 가늠해 본다.
그러던 중, 도파민형 인간이란 책을 읽고는 그리고 과연 나의 이런 성향이 MBTI 때문일까? 아니면 빨리빨리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현대인의 자구적 노력의 결과(?) 혹은 단순 도파민 중독 때문인가?를 두고 저울질한다.
도파민형 인간이란 책은 '읽고 바로 실행' 모임에서 한 멤버에게 추천받은 책으로, 최근에 가장 빨리 완독에 성공한 책이다. 도파민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는 데, 도파민이 '사랑'과 '욕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이라는 점, 그리고 빠른 피드백이 도파민 분출 회로를 작동시킨다는 점을 확실하게 집어준다.
도파민은 인간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온 세상을 장밋빛 미래로 뒤덮는다.(p. 72) 도파민은 훨씬 좋은 날이 곧 올 거라는 환상을 머릿속에 심는다. 그래서 우리를 계속 더, 더! 하고 외치는 천하의 욕심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p.35)
여기서 빠른 피드백이 관건인데, 특히나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때, 그 기대 때문에 도파민이 왕성하게 분출된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현대 SNS 기술과 만나면서,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만 열면, 도파민 분출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도파민이 불러오는 신선한 감각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기대'가 아닌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만 오랜 연인이 될 수 있다... 모두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불완전성을 인정해야 한다. (p.41)
다시 말하면, 현대인은 SNS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도파민에 중독된 것이고, 더 새로운 것, 더 자극적인 것을 더 빠르게 원하는 도파민 호르몬의 특성 때문에 관심은 온통 미래에 머물러 있고, 현실에 대한 애착이나 주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것이고도 말한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할 때, 흔히 등장하는 도파민 호르몬은 어찌 보면 디톡스가 필요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 모닝커피와 퇴근 후 소셜미디어 끊기...'도파민 디톡스' 해보셨나요 (chosun.com).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도파민 호르몬의 온갖 부정적 측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현대인에게 오히려 도파민 작동 회로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부각된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하면 어떻냐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첫째, '욕망하는 것'(도파민 분출)과 '좋아하는 것'(도파민 통제)를 구분하여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출하면, 자연스럽게 통제회로도 작동하는 데, 이 도파민 통제회로는 인간을 훨씬 성숙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통제회로의 힘을 빌린 인간은 주변세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모형화하는 데, 이는 상상력과 창조적 사고의 핵심재료가 된다. (p.119)
더하여 세상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모형화하고 생각하는 회로에서는 '유추'라는 사고 행위가 일어나는 데, '유추'는 그야말로 도파민의, 도파민에 의한, 도파민을 위한 기능이라고 한다. (p.201) 오감으로 느끼기에는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논리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2가지를 짝짓는 것이기에 이 '유추' 작업은 과학자나 예술가의 고유 영역이고, 일반인도 도파민 회로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이 사고법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둘째,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훈련을 해보라는 것이다.
이 방법은 유발하라리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의 마지막 장에서 제시한 방법과도 비슷한데, 도파민 과잉과 도파민 탐닉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에서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행동을 습관적으로 행해보라는 권고다. 자연 속에서 산책하고, 매일 아침 호흡에 집중하며, 오래된 물건을 정성스럽게 오랫동안 사용해 보는 습관의 변화에서 도파민 발화 횟수를 줄이고, '애착'의 정서, '공감'의 호르몬인 옥시토신 발화의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보라는 권고다.
속도와 변화를 즐기는 나와 같은 INTJ 성향의 사람에게 딱 맞는 조언이 아닐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