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왜 이리도 잔고장이 자주 나는 걸까? 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찐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너무도 쉽게 말을 하고, 행동하고, 결정을 내리고 나서 또 후회한다. 칭찬에 약하고, 조언에 쉽게 질려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다.
저자는 '진화 심리학'관점으로 인간 마음의 불완전성 문제에 접근한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인간의 위대한 유산인 '숙고' 체계와 '본능'체계를 이해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쓰라고 조언한다.
인간이 진화의 선상에서 '숙고'와 '본능'체계를 동시에 가진 것은 인류에게 행운이다. 그러나 타고난 사고체계를 조화롭게 훈련시키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책을 읽고, 사색하고,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점을 알아내고, 주어진 자료에 근거하여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작업 등은 상당히 많은 신체 에너지의 집중을 요하는 인간 활동이다. 그만큼 개인적인 노력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근대 교육기관에서 숙고하는 인간의 뇌 학습을 위하여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인간이 숙고하는 활동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가 싫고, 공부가 싫고, 숙제가 싫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신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하고, 음식을 만들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위들은 우리가 진화적으로 충분히 발달시켜 온 뇌의 본능 기능에 충실한 인간의 행위다. 지난 진화의 기간 동안 우리의 선조들이 행한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학원에 빠지고, 댄스 동아리와 보컬 트레이닝에 더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는 중학교 1학년 우리 아이의 주장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진화 측면에 봤을 때, 훨씬 더 오래된 인간의 신체기관(본능의 뇌)을 활용하겠다는 아이의 주장은 더 합리적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인간의 숙고체계를 훈련시키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은 너무 쉽게 실수하고, 후회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래의 삶에서 조금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해결안을 마련하고, 서로 협력을 구하고, 중재하는 데 숙고체계가 본능보다는 더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숙고하는시스템의 훈련을 통하여 문제를 보다 다각적으로 보는 법, 상대방의 뻔한 속임수를 눈치채는 법, 중요한 의사 결정의 순간에 객관적 자료에 의존하는 법, 실수에 대처하는 법, 정보에 통제력을 발휘하는 법 등을 훈련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분명 숙고체계는 인간이 진화상 최근에 만들어 낸 능력이다. 아직까지 손 볼 곳이 많고, 잔고장도 많이 일으키는 문제가 많은 기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숙고 체계는 의존할 수 있는 다양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책의 말미에 숙고 체계를 잘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정리해 놓았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우리 인류의 뇌가 문제가 많고, 잔고장도 많이 일으키는 진화적으로 가장 덜 성숙한 조직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둘째: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직관에 의존하더라도, 학교에서만큼은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함께 고려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셋째: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미역국을 먹었기 때문에 시험을 망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공부를 안 해서 시험을 망친 것이다.
넷째: 피로하면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감정적으로 격해있을 때는 되도록 상대방에게 약속을 하지 말 것.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섯째: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회적인 것을 경계하라. 초콜릿을 경계하고, 성공적인 다이어트 후 나의 모습을 떠 올려보기 바란다.
여섯째: 쉽지는 않지만 때때로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적어도 아침 일찍 계획을 세우거나, 늦은 밤 일기를 써보며 그 시간 동안 만이라도 합리적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화를 내고 있는 상대방의 머릿속 작동방식이 떠오른다면 일단 성공이다. 또한 화를 내면서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그것 또한 성공적 독서의 산물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화를 내고, 상처 주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닐 수도, 진심일 수도 있다. 말하는 의도와 다르게 사용하는 언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선한 의도가 상대방에게 악의적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대방을 탓하지 말자. 대신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사소한 행동이 상대방의 뇌에 어떤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우리 인간은 아주 때때로 합리적이고, 아주 가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존재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 양식 때문에 상대방이 자기 방어적 입장을 보이면, 이를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해져야 한다.